2. 무겁디 무거운 가운을 벗은 날, 8월23일.

평범했던 전공의의 눈으로 목격한 2020년 의료파업.

2. 무겁디 무거운 가운을 벗은 날, 8월23일.

8월23일 일요일.

언론에서는 가운을 벗는 사진만을 찍었지만, 사실 그 가운을 벗는 과정은 하나라도 허투루 준비된 것이 없었다. 그저 치기어림이나 객기로 벗어 던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절박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가운을 벗기로 “준비돼”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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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 명씩 남기겠다고 하시는데, 이러면 저희도 안 남길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요?”

1이라는 숫자는 상대적이다. 전체에서 마지막 하나가 되면, ‘최소한’이라는 의미가 되고, 0의 바로 옆에서 보면 ‘0이 아닌 전부’라는 의미로 뻥튀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1이라는 의미는 전자도 후자도 됐다. “필수인력”을 얼마나 남기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3년차인 내가 우리과 의국장 대신 참여한 의국장회의에서 의국장들은 의국에 한 명을 남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저희 A 과는 전원 파업입니다”

“저희 B 과는 1명 당직 때 비상인력 남기기로 했습니다”

“저희 C 과는 1명 비상인력 남기기로 했습니다”

비상인력을 남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과가 여럿 나오자 자기 차례가 온 한 의국장이 작심한 듯 한마디 했다.

“파업이라고 한다면 전원이 참석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의국장은 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 과도 필수인력 남기겠습니다. 교수님 압박 버티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안 나오려면 다 같이 안 나와야지 이러면 어떤 과도 못 버팁니다. 안 그래도 지난 7일, 14일 병원에 근무하러 온 전공의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저희 교수님이 얼마나 저희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과는 일하러 나오는데 너희는 놀고싶어서 환자도 안 보냐고요. 이대로 가면 필수인력이 아니라 전원이 일하러 나오게 생겼네요.”

“… 지난 집회때 아무도 병원에 나오지 않은 것은 CCTV로 확인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잘 전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D 과 선생님”

“저희 D 과는 1명 비상인력 남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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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6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3차 단체행동 로드맵을 밝혔다.

8월21일 금요일부터 인턴과 4년차가 업무를 중단했다. 다음날인 22일 토요일부터 3년차가, 그 다음날인 23일 일요일부터는 1, 2년차가 업무를 멈췄다. 즉 8월23일부터는 인턴을 포함한 모든 전공의들이 업무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단체행동은 지난 8월7일과 14일 하루씩의 업무중단과는 달랐다. 무기한 업무 중단이었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막대했다.

전공의가 하루만 없어도 병원에서 난리가 났는데 전공의가 계속 없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은 눈에 보이듯 뻔한 일이었다.

우리 과에서도 전공의 전면 업무중단에 대비해서 매일같이 논의가 벌어졌다. 전공의 공백을 메울 방안과 스케줄 조정 등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오프인 날도 의국원들과 끊임없이 전화했던 기억이 난다.

병원 측에서도 완전한 업무중단은 곤란했는지 CPR팀 ‘자원봉사’ 등의 안이 나왔다. 어느 대학병원이나 입원환자가 심정지로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데 이에 대처하는 비상인력을 자원 받겠다는 말이었다.

병원 비상인력을 CPR ‘자원봉사’라고 하면 그게 파업이냐고 비난할 전공의나 현재 인턴을 포함한 당시 의대생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의사나 의대생 커뮤니티에서 총파업때 병원으로 들어와 근무하는 전공의들에 대한 비난이 굉장히 컸다. 연대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교수나 간호사가 업무를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 했지만, 업무량이 어마어마한 전공의 업무의 특성상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빠지더라도 우리의 업무를 대신할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내가 보던 환자한테 지장이 갈까 싶어 어떻게든 내 자리를 메꿔놓을 고민을 계속하게 됐다.

사실 내가 속해있는 신경외과에서도 매일 1명씩 저녁에 병원에 나와 근무를 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8월14일부터 21일까지의 1주일은 통째로 전공의 업무공백 대책과의 싸움이었고 주변 전공의들에게 물어봐도 그 1주일은 대책 세우느라 힘들었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첨언하자면 앞서 대화에서 7일, 14일 집회때 어떤 전공의도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몇달 뒤 한 전공의가 사실은 그 때 병원에서 나왔노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후 대전협 로드맵에 따라 21, 22, 23일 순차적으로 전공의들의 업무중단이 시작되었다. 23일에 인턴부터 4년차까지 모든 전공의가 업무를 중단하였기 때문에 일요일인 23일, 성명서를 낭독하고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는 행인들이 적은 일요일 아침 8시에 진행되었다. 조용히 내려앉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전공의들은 평소 입던 흰 가운을 입은 상태에서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섰고, 성명서 낭독 후 한 명씩 차례로 가운을 기둥 옆에 내려놓았다.

‘옷을 벗는다’는 의미는 보통 하던 업을 내려놓는 의미로 통칭되지만, 술기를 많이 하는 신경외과 전공의인 나에게 가운을 벗는 것은 의업을 내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균적으로 술기를 하기 위해, 혹은 술기를 어려워하는 아랫 년차를 돕기 위한 것으로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의업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이유로 가운을 내려놓자니 생애 처음 겪는 일이라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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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7일 첫 집회 이후 14일 집회를 앞둔 12일 대전협의 ‘긴급 전공의 대표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진행되었다. 내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이 날 안건은 2가지로 ‘필수의료업무 유지를 위해 단위 내 협의를 거쳐 단체행동의 참여한다’, 그리고 ‘비대위의 로드맵 (정부의 재논의 입장 등 표명 없을시 21부터 무기한 파업 선언)에 따른다’였다. 두 안건 다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특징적인 것은 12일 전국 대표자 회의는 관련 기사 등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는것, 그리고 대의원이 아니어도 참석할 수 있어 이후의 회의와 달리 공개된 회의였다는 점이다. 이후의 대전협 전국대표자 회의는 보안 유지를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14일 집회는 대전협이 아닌 의사협회에서 준비한 것인데 집회 1주일 전 갑자기 발표한 대전협 집회와 달리 이 날 집회는 2달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일은 의대생들의 동맹휴학과 국시거부가 진행되었다.

19일에는 박지현 전회장을 포함한 의협측 인사들이 보건복지부와 장관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간담회 전, 보건복지부가 ‘전면재논의’를 받아들이면 21일 단체행동은 연기된다는 공지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체행동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협상이 결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이 ‘코로나 때문에 2시간 밖에 못 잤다’, ‘참을 인을 세 번 쓰고 나왔다’, ‘전공의들이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거 같다’고 발언한 사실이 전공의들에게 전달되어 수 많은 전공의들을 분노케 했다.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있는 전공의들이 코로나19가 심각한지 모른다니, 그리고 2시간 밖에 못 잤다는걸 전공의들 보고 말하다니, 얼마나 정부가 의료계 최전선에 서있는 전공의 입장에 무지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파업 초반이 후반과 가장 달랐던 것은 파업에 대한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밥그릇 싸움, 환자를 인질로 삼는다는 등의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의사 부족이 근거가 없다던가, 파업은 돈 못 받고 부당한 대우 받는 노동자들이나 하는 건줄 알았다던가, 환자들을 볼모로 삼는다던가 말이다.

23일 총파업이 시작되면서 느꼈던 점은, 전공의들이 당시 집행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후에 박지현 전 회장이 언론에 인터뷰를 한 것처럼, 우리 대부분은 집행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회장의 이름 앞에 ‘빛’이라는 단어를 붙여 애정어리게 부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박 전회장이 언론 인터뷰에 말했던 것처럼, 대전협이 정보의 제한 없이 열려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 모두 생각하고, 알아야 할 권리가 충족되고 있다고 믿었다. 정말로, 다들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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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 두번째 집회는 제가 그 주 휴가였던 관계로 묘사를 생략했습니다.

지난 회 연재 후 누락된 사실에 대한 제보가 많았습니다.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완벽한 글을 목표로 했기에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공받은 자료는 방대했습니다. 수많은 카톡 캡쳐들 텍스트파일 피피티파일 심지어 녹음파일까지. 다 담으면 정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 될 겁니다. 하지만 90% 이상이 제 글에 담기지 못했습니다. 이어질 글에도 담기지 못할겁니다. 왜냐하면 의혹제기가 가능한, 조작이 가능한 내용은 가급적 언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으로 본 것으로 묘사한 첫 번째 파트를 제외한 이 후의 파트는 거의 모두 조작 불가능한 근거가 있는 내용입니다. 글의 흐름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그렇지 않은 내용을 담을 때는 ‘증언에 따르면’ ‘내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등의 부가설명을 달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조작 불가능한 증거’에 집착한 이유는 단체행동기간 당시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찌라시들이 넘쳐나 어떤 글을 믿어야할 지 알 수 없었던 기억 때문입니다. 지금 자료조사를 충분히 한 상태에서 당시 찌라시들을 보니 몇몇 찌라시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글을 믿지 못해서 제대로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글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사실 8월23일 까지는 관련기사나 텍스트량이 적었는데 이후 ~8/29, ~9/4 까지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합니다. 1주일에 1개씩, 10월 중에 완결 내는게 목표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본업을 잘 챙기는게 제일 중요하니깐요. 그래도 자료조사와 정리, 결론까지 구상은 얼추 해놓아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급적 10월 중에 완결 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11. 의사는 공공재…의대정원 확대, 정부 의지 강경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724

8.11. 의사 부족, 근거 없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057875?sid=102

8.11. 전국 의대생 ‘동맹휴학·의사국시 거부’ 촉각

http://www.dailymedi.com/detail.php?number=859156&thread=22r04

8.14. 오늘 의료계 총파업…이 시각 서울대병원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today/article/5873401_32531.html

8.14 오늘 의사들 파업에 언론 반응 “밥그릇 지키기” “이기주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729

8.16 전공의, 21일부터 무기한 업무중단…장기화때 코로나 진료 ‘비상'(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816044551017

8.18.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의대생들, 결국 국시 거부 감행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59

8.20 19일 ‘의‧정 간담회’, ‘의-정 공방회’로 전락…대전협 “복지부, 단어 놀음한다”

https://www.medigatenews.com/news/1192967927

8.20 “忍자 세번썼다” 손영래 대변인 강압적 발언 논란 해명

http://m.medicaltimes.com/News/1135360

8.23. ‘무기한 파업’ 전공의 대표, ’90년생’ 박지현 대전협 회장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882

0. Prologue. 한성이와 반성이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468004966613229

1. 의료파업의 첫 단추. 8월7일 대전협 집회.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491019247645134

2. 무겁디 무거운 가운을 벗은 날, 8월23일.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15153955231663

3. 가짜뉴스와 절대로 깨어져선 안됐던 믿음. (8/23~26)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43407369072988

4. (외전) 이대의대생-이대목동병원 전공의 간담회 (9/10, 파업종료 이후)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62596597154065

5. 추노, 보건복지부에서 온 노비 사냥꾼. (8/26~28, 8/31)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86703301410061

6. 밀실회의 (8/29~30)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34251673321890

7. 파업 종료 직전. (9/1~9/3)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67261516687572

8. 제3차 범투위 회의, 9.4합의 서명 전날의 회의. (9/3)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90056504408073

9. 의정, 의당 합의. (9/4)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713603208720069

10. 대전협회의, 서울시의사회 난입사건. (9/5)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95085520166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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