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낙서장

  • 놀란이 권력자를 묘사한 방식.

    영화 오디세이에 대해 대체로 호평이다. 특히 개연성에 있어서는, 원작을 많이 바꿨는데도 오히려 나아진 부분이 많았다. 전쟁의 원인이 사실은 헬레나가 아닌 무역로 확보였다던가, 목마의 바퀴를 빼버려서 오히려 의심할 필요 없이 성 안에 들여놨던가 하는 부분이다. 나는 특히 총대장이었던 아가멤논의 모습에서 이런 개연성을 크게 느꼈다.

    아가멤논을 다루는 숏츠들이 많다. 2004년의 ‘트로이’와 이번에 개봉한 오딧세이. 같은 인물, 같은 시기인 만큼 두 작품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아가멤논의 리더십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두 영화는 완전히 달랐다.

    ‘트로이’의 주인공은 아킬레스였다. 아가멤논은 그저 조연일 뿐이었다. 아킬레스의 유능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소비됐다. 권력을 쥐고 아킬레스를 부당하게 탄압하고 이용하는 인물. 딱 거기까지. 아가멤논이 어떻게 그 권력을 형성했는지는 그냥 ‘원래 주어진 것’으로 퉁치고 넘어간다. 나쁜 왕이 아킬레스를 괴롭히는데 무능하기까지? 딱 이 수준.

    트로이를 보면서 계속 했던 생각은 이거였다.

    영화속 아가멤논처럼 하면 병사들이 왕을 따를까? 신의 아들인 것도 아니고 유능한 것도 아니라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커녕, 아킬레스를 화나게 해서 전황을 불리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다못해 본인이 앞장서기라도 해야할텐데 그렇지도 않다. 아킬레스가 아가멤논의 지시로 전투에 나서며 ‘대장이 직접 나서야 권위가 선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영화 속 아가멤논에게서는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인물이 어떻게 저 정도의 권력을 형성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 그러니 1차원적인 악역 캐릭터가 됐다.

    하지만 ‘오디세이’의 아가멤논은 달랐다. 가장 눈에 띤 장면은 딸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이었다. 원작에서는 군대가 이미 출정한 뒤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딸을 바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영화는 순서를 바꿨다. 아가멤논은 군대를 모으기 ‘전에’ 딸을 제물로 바친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그런 아가멤논에게 거역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2024-25 의정사태가 떠올랐다. 동참했던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커리어를 1년 넘게 희생해야 했다. 그렇게 희생한 이들은 격분해 있었고, 정작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은 선배들의 조언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전공의들과 개인적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군중으로 그들을 마주할 때는 당사자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졌었다. 박단 위원장도 사직한 전공의 당사자였고, 가장 영향력 있던 홍재우 선생님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했던 인기과 전공의였다. 당시 회장 탄핵 이후 치러진 재선거에서는 아들이 전공의였던(당사자성이 어느정도 있었던) 김택우 후보가 회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당선 이후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당시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금 와서 봐도 적중률도 높았다. 하지만 아내가 만류하는 바람에 쓰려던 글의 절반도 채 못 썼다. (그나마 썼던게 ‘윤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단 기고문이었는데, ‘시위를 해야한다’로만 사용되어서 굉장히 슬펐던 기억도 있다) 아내는 말했다. “희생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희생하지 않은 전문의 선배의 충고는 듣지 않을 거야.” 정확했다. 그때 분위기는 희생하지 않은 선배는 다들 입 다물라는 식이었고, 희생자들이 만들어낸 군중심리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쓰기는 했지만, 나를 포함해도 그들만큼 희생한 선배는 없었으니까.

    전쟁은 피를 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의정사태 당사자들의 희생도 정말 컸지만, 전쟁터의 군인들은 이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군인들은 돌격을 지시하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무의미한 전쟁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딸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가멤논도 딸을 희생시킨 중요한 전쟁이니까”는 논리다. 실제로 통했을 것이다. 논란은 그 지점을 본 것 같다.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아가멤논의 리더십은, 다름 아닌 딸의 목숨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관람평을 보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보였다.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시더라. ‘아가멤논은 딸도 제물로 바친 미친놈이라 참전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맞는 말이지만 다른 부분이 사실은 더 크다.

    오디세우스 입장에서, ‘왕이 딸까지 제물로 바쳤다면 내가 참전을 피할 명분은 없다’는 것. 죽을 수도 있는 전쟁이지만 왕이 딸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 이 전쟁이 엄청나게 중요해졌다는 것. 이정도 밑작업을 해뒀기에 장군과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밑작업 없이 진행했다가 군인들이 태업한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

    그 뒤로도 아가멤논은 시종일관 카리스마 넘치는 왕으로 그려지고, 오디세우스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참고로 놀란은 촬영 중 배우들에게 꽤 위험한 요구를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특히 목마 안 촬영은 배우들이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고 증언할 정도이기도 했다. 전쟁과 비슷한 상태에서 촬영진을 이끌어야했던 놀란도 이러한 카리스마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감독생활 내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걸작이 맞다. 영상과 음향 뿐만 아니라 (2D, IMAX 둘다 봤는데 2D로 봐도 좋다) 주연 배우들의 심리묘사와 그 사이에 있는 개연성까지 완성도가 엄청났다. 특히 페넬로페가 빈왕좌에 대해 언급한 것(I’ve been sitting on that empty throne for 20 years!)가 굉장히 페미니즘적이라는 얘기를 아내와 나눴는데, 확실히 아내와 얘기하니 생각못한 관점이 나와서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 여유가 되면 조만간 이 부분도 써보려 한다.

  • 대전현충원 방문

    이번 제헌절엔 아내와 함께

    외할머니 뵈러 대전 현충원에 방문했습니다.

    어머니가 맞벌이로 바쁘셔서, 저와 제 동생은 외할머니가 키워주셨었습니다. 키운 정 때문에 장례식 때도 저와 제 동생이 제일 슬퍼했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생전 소원은 현충원에 묻히는거였습니다.

    외할아버지의 6.25 참전 인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요.

    다행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지나, 간신히 병적이 확인되었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현충원에 이장되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막내였던 어머니가 태어나신지 얼마 안 되고 돌아가셔서,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외삼촌들께 어떤 분인지 설명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혼자 외갓집 식구들을 부양하려다보니 누워서 주무시는 날이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lumbar kyphosis가 심해서 허리가 완전히 굽어 있으셨는데, 몰랐는데 허리 피는게 생전 소원이셨다 하시네요. 척추 펠로우 시작할 때 어머니가 처음 말해주셨는데, 작은 수술은 아니어도 수술로 허리 펼 수는 있었다 말씀드리니 굉장히 아쉬워하시던 기억이 닙니다. Vertebroplasty만 제때제때 할 수 있었어도 정말 좋았을텐데요.

    국화 한 송이와 소주 한 잔 올리고 나니 찐옥수수를 못 챙긴 게 내심 아쉬웠습니다. 외할머니가 찐옥수수를 좋아하셨거든요. 어머니도 그래서 현충원에 오실 때마다 찐옥수수를 가져오시고요. 아내도 찐옥수수를 좋아하는데, 챙겨왔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부모님께 아내와 둘이 대전 현충원에 왔다고 말씀드리니 아내에게 고맙다며 잘했다 하시네요. 묘지 경치가 좋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좋은 데 계신 듯해 마음이 놓였고, 몇 년 전부터 와야지 와야지 하던 숙제를 마친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 환단고기에 대한 생각

    환단고기 관련해서는 다른 분들이 맞는 말을 워낙 많이 해주셔서 얘기를 안 하고 있었는데, 늦었지만 해보려 합니다. ‘정은경 장관 한의학 발언’ 관련 기고문을 쓰면서 환단고기 언급을 했던 터라서요.

    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밀레니엄시대 인터넷 부흥기에 걸쳐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넷에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도 팩트인마냥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터넷 대중화의 초기시절이라, 50, 60대 중에 인터넷을 하는 분들이 없으니 30대 초중반 비전문가들이 당시 넷상에서는 최고의 전문가 취급을 받던 시절이죠.

    선동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에 난리였던 미군장갑차 사고도 있었고, 안톤 오노나 F15 등 반미운동하던거 .. 저도 보고 같이 욕했었죠. 지금의 저와 달리 일본도 무지하게 싫어했었고요.

    부끄럽지만 환단고기도 당연히 믿었었고 동생 친구를 옆에 앉혀놓고 환단고기나 대륙백제설 같은거 가르켜주던건 지우고 싶은 중학생 시절의 흑역사이기도 합니다.

    유튜브가 지금은 허위사실 유포의 온상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반대로 ‘진짜 전문가’들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시대를 열어젖힌 것도 사실입니다.

    (갑자기 유튜브 찬양처럼 돼버려서 덧붙이면, 2016년 공보의 끝나고 모은돈으로 구글알파벳(유튜브 모회사) 풀매수했는데 코로나로 최저점 찍었을때 다 팔아버렸습니다 ㅠㅠ)

    해서 환단고기는 역사덕후였던 저의 최악의 흑역사입니다. 밀레니엄시대 역사덕후 중에 저같은 분들 은근 많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요새도 선동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전문가들이 유튜브에서 팩트체크 해주는 세상이라 옛날보다는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

  • 오징어게임3에 대한 짧은 악평

    (스포있음) 오징어게임3 너무 재미없고 감정선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내용을 대체 왜 그렇게 만들었지 고민해봤는데, 대한민국 초저출산을 묘사하려는 좌파 586세대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니 딱딱 맞아떨어지네요.

    밑도 끝도 없는 50대 성기훈의 헌신, 악랄한 가해자와 한심한 피해자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2030 남성들.

    아직 골절이 다 낫지 않아 힘들긴 한데 되는대로 정리해서 써보겠습니다.

  • 힘과 규칙: 국제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서평.

    한줄로 말하면, 성조기 흔드는 분들이나 러-우전 러시아 응원하는 분들이나 기본적으로 읽어보시면 좋겠다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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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북에는 임명묵 작가의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라는 책을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거 같다. 임작가의 책은 자유주의 진영의 정반대편에 있는 러시아의 세계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준다.

    ‘힘과 규칙’은 반대로, 자유주의 진영의 세계관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다.

    외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외교학 외에도 세계사, 정치철학, 경제학 등을 인용했다.

    생일에 박한슬 작가가 선물해준 책이라 서평 꼭 써야지 하고 2독 했다. 1독은 굉장히 어려웠는데 저자가 설명을 개념정리부터 명확히 해놔서 두번째 읽을때는 훨씬 수월했다.

    책의 성격은 다소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곁다리로 안 새고 꼭 필요한 내용만 자세히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초반에 인용되는 ‘토마스 홉스’나 ‘존 롤스’ 같은 정치철학자들은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냥 어려운 책이 아니라, 꼭 해야하는 말만 해야하는 말만 했지만 우리가 그만큼 몰랐기 때문에 어려운 책인 느낌이랄까.

    책은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라고 묘사하는듯 하다. 그리고 ‘자유’가 정확히 어떤개념인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변곡점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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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박한슬 작가가 콕 찝어서 이 책을 선물한 이유가 뭘까’ 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책의 성향이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는 박작가의 책과 성향이 유사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박작가는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에서 결론을 본인이 내리는 대신 독자들에게 결론을 내릴 기회를 넘겨줬다. 의료제도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설명한 뒤, 독자들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형태였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가 과연 우파인지. 미국의 외교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 저자는 본인이 판단하는 근거가 있음에도 개인의 의견은 철저하게 가려두고 독자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외교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유튜브 대신 깊이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꼭 읽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 봉준호의 미키17 관람평

    – 가볍게 보자면 가볍게 볼만하고, 무겁게 보자면 기대 이하인 영화.

    2월28일 개봉. 기생충 이후 봉준호의 첫 영화.

    봉준호 영화 특유의 스토리라인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체제모순을 지적하고, 개혁적이고 기존체제를 엎으되, 대안은 나오지 않는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라.

    살인의추억이 명작이 됐던 이유도, 나도 그 영화를 사랑했던 이유도, 스토리라인이 모순점을 지적하는데서 끝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생충도 그랬다. 뒷편에 송강호가 칼부림하는게 정말 공감되지 않았다. 대신 그거 빼고는 다 좋았고, 참신했고, 아카데미상 수상까지는 국위선양 그 자체였다. 그래서 미키17도 봉준호에 대한 리스펙으로 일단 보기로 했다.

    미키17은 우주 탐사를 위해 실험체로 사용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미키는 임무 수행을 위해 16차례의 죽음을 되풀이하지만, 인체 복제를 통해 기억이 그대로 유지된 채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반복되는 죽음과 재탄생 속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와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는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깊이 생각해볼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가볍게 보려면 볼만했다. 우주SF영화지만 인체복제에 대한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 아일랜드가 떠올랐다. 미키17에서 달랐던 것은, 외부에 저장된 뇌의 데이터를 다른 인체에 전송되었을때, 그 인체는 이전의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꿈꾸던 영생의 가장 현실적인 형태를 다루고 고민한다는 점. 딱 그거 하나만은 참신했다. 나도 한번씩 생각하던 내용인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그거 빼고는 평이한 스토리라인을 가졌고, 중간중간 소소한 봉준호 스타일의 유머 때문에 타임킬링 용으로는 볼만하단 느낌이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하지만 나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은 영화 전반에서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을 두고 잘나가는 여자들이 쟁탈전을 벌인다던가. 우주선의 지도자가 우스꽝스럽게 나오는데도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 등. 용광로에서 뻔히 살인사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도 경비원도 없는 등등. 스토리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개연성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특히 불편했던 점은, 기존에 봉준호가 보여주던 정치적 성향을 완전한 미국식 버전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

    봉준호가 미국에서 심하게 나쁜 경험이라도 겪었던건지? (나의 경우는 짧지만 좋았던 기억만 있다) 완전한 악으로 묘사되는 우주선 지도자가 종교를 통해 우주선을 장악하고, 또 찬송가를 부르며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미국의 기독교 우파를 너무 대놓고 조롱하는 모습이라 유머러스 하기는 커녕 오히려 불편했다. And singing hymns while committing bad acts felt like an obvious mockery of the American Christian right, which was not funny at all and made me very uncomfortable.

    여기서 더 붙이자면, 영화가 2022년 말로 윤석열 당선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빌런이 너무나도 윤석열과 김건희를 떠오르게 한다는거? 의사들이야 다 윤석열 싫어하니까 이 점은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밌었던 점을 뽑자면, 미키17과 복제된 미키18을 보고 그의 여자친구가 쓰리썸해도 된다고 기뻐하던 모습 같은거는 요즘 웹툰 설정같은 느낌도 들고 굉장히 참신한 느낌이었다. 그 외 영상미도 볼만했고. 영화에 비중있는 아시아인이 둘이나 나왔던 점도.

    봉준호가 2006년 괴물 찍고 완전 반미 영화감독이 됐었는데, 미키17은 약간 부드러운 괴물’The Host’의 미국 버전 아닌가 싶다.

  • 2025.01.26. 주말 미술관 나들이

    월요일 출근. 하지만 다음날부터 연휴라는 마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 대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두군데 다녀왔습니다.

    1. 대림미술관

    게이치 타나미전.

    대림미술관 하면 잘 모르고 봐도 일단 이쁘고 기분 좋아지는 캐쥬얼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 전시는 하드코어한 느낌.

    페북에 글 쓸때 좋아요는 아예 포기하고 나 하고 싶은 글을 쓰는 때가 있는데, 딱 이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고싶은거 하려고 대중성은 잠깐 내려놓은 느낌. 그리고 난 대중적인 관객이었음.

    2. 국립현대미술관

    이강소 풍래수면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전시.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좋았음. 돈이 많다면 작품 하나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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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작가상 2024

    작품들은 확실히 트렌디하고 예뻤다. 다만 모르고 보면 살짝 어렵다는 느낌. 네 작가가 모두 개성 있고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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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작품은 이쁘긴 한데 미술관 올때마다 페미니즘 전시회가 있다보니 관람자 입장에서 보면 주제가 식상함.

    아내 피셜 : 페미니즘 작가는 자꾸 나보고 화내라고 부추기니까 피로도가 극심하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신체’에서 탈피하는게 그 시작이고, 그 이후까지 추구해야 완성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아직까지도 신체에 집착하고 있다보니 진부하다는 느낌. 옛날 작품이 많아서 그렇게 느낀건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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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이동

    신선한 시도 같은 느낌? 특별히 강한 인상까지 받지는 못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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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해시태그

    순간이동과 비슷했음.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냥 그랬던건가 싶기도.

    3. 결

    외국여행 가면 미술관을 챙겨가는 편인데, 외국 여러나라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미술관 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함.

    나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고 일반인치고는 관심이 있는 편인데, 어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회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음.

    현장에 외국인도 많았고, 매년 외국인방문객 수가 신기록을 갱신하던데 그럴만하다고 생각함.

  • ‘죄와 벌’에 나오는 소개팅남들

    (당연히 스포 많고 내용도 무척 김)

    만화나 영화에서, 어떤 사람이 고민할때 머리 양쪽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사와 악마는 그 사람의 선과 악이다. 선과 악을 더 디테일하게, 감정별로 나눈 영화도 있다. 인사이드 아웃이 그렇다.

    머리 속의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사이드아웃의 감정 캐릭터들은 자기 자신이다. 사람의 머리 속에만 있다. 이런 캐릭터를 머리 밖으로, 하나의 등장인물로 만들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방식이다.

    (복거일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우화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것이다.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고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들을 인물로 만들었으니까.)

    ‘죄와 벌’의 주인공에게는 존예 여동생인 두냐가 있다. 홀어머니랑 살면서 주인공인 오빠를 위해 헌신하느라 교육수준은 높지 않지만 기품있고 하녀일 하면서도 귀족적인 이미지다.

    (사진은 1970년 소련에서 만든 ‘죄와 벌’에 나오는 두냐)

    아무래도 존예다보니 두냐를 사랑하는 남자도 많다.

    두냐가 하녀일 할때 집 주인이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너무 길어서 이하 ‘스비드리’), 스비드리가 몰락한 뒤 스비드리의 부인이 소개시켜준 본인의 부자친척 루진, 주인공 친구인 법대 휴학생 라주미힌 세 명이다.

    세명 다 두냐랑 결혼하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데, 나름 메인서사는 아니면서도 메인서사 바로 옆에 찰싹 붙어서 함께 진행되는게 또 읽기힘든 장편소설의 매력이다.

    ‘주인공의 범죄와 자수’라는 메인스토리 대신,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존예 여동생 시집보내기’ 스토리에 집중해보았다.

    1. 루진

    – 돈만 많은 사업가 스타일

    이 소설을 일제시대를 대입하면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지는데, 주인공은 법대 진학할 정도로 엘리트라 다들 ‘나 대학생이요’ 하면 다들 놀라 귀족 취급을 해주면서도, 돈이 없어서 끼니를 거를 정도로다.

    주인공 엄마는 굶주리는 주인공에게 보내줄 돈도 없다고 피눈물 흘리고 그 와중에 두냐는 성희롱에 ‘니가 꼬리쳤잖아’까지 시전당하면서 온갖 고생하는데, 고생 후 낙이 오는지 오해를 푼 안주인이 소개시켜준 ‘루진’이라는 부자와 약혼을 맺게된다.

    루진은 변호사도 아니고 어쨌든 엘리트는 아닌데 법무일 하면서 돈을 많이 번 부자다. 근데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돈 뿐이라 결핍이 많다. 학벌 컴플렉스도 있고, 아비투스?에 대한 결핍도 있다. 본인의 품위가 없어서 그걸 외모도 품위도 지성도 모두 갖춘 두냐랑 결혼해서 극복하려고 함.

    근데 워낙에 가진게 돈 뿐이라, 흙수저인 두냐와 가족들을 돈으로 좌지우지하려 하다가, 본인의 속마음을 주인공에게 바닥까지 털려서 결국 추하게 퇴장하고 만다.

    초반에는 주인공이 흙수저의 열등감에 부자인 예비처남에게 패악질 부리는 것처럼 나온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루진의 바닥이 드러나고, 돈 빼고는 내세울게 없다보니 돈에 집착하고 스펙도 재산도 없는 두냐를 내려치는 모습이 … 골드스푼 익명게시판에서서 여자들 욕하는 골스남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돈도 스펙도 딸리는 골스녀들이 감히 나를 차?’라고 씩씩거리는 모습이 150년 전 소설에서 정확히 묘사된다 ㅋㅋ

    2. 스비드리가일로프

    – 강의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는 픽업아티스트, 호빠남

    ‘스비드리’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입장에서는 뭔가 짠한 캐릭터다. 해온 짓거리만 보면 개새끼 중의 개새끼인데, 또 당사자 얘기 들어보면 오해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초반에는 완전히 변태로 나온다. 본인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두냐 꼬시려다 망해서 동네에서 개쓰레기로 매장되고, 중반까지는 음침한 변태처럼 보이는데 .. 이게 또 주인공이 스비드리 만나서 얘기해보니까 나름 호감형인 멀쩡한 놈인거다.

    오해도 많이 받았던게, 두냐도 좀만 잘하면 거의 꼬실뻔했던걸 삐끗해서 망하고 성희롱범으로 전락해버린거고 .. 부인을 폭행해서 죽였다고 소문 돌았지만 본인 얘기 들어보면 그거는 폭행이 아니라 SM 플레이를 했을 뿐이고 우연히 그날저녁 심장마비(or독살) 같은거로 죽은건데 이게 부인을 때려죽인거로 오해받은거임. SM 플레이도 살면서 몇 번 안 했고, 부인을 때리는 일도 SM할때 빼곤 전혀 없었다고 함.

    부인 놔두고 딴 여자들 꼬시며 부인 피눈물 흘리게한거 같지만, 또 얘기 들어보면 결혼하기 전에 부인이랑 전부 합의하고 결혼한거임.

    스비드리의 마성의 매력에 빠진 부인이 결혼하자 결혼하자 매달려서, ‘결혼 후에도 다른 여자랑 사랑만 안 하면 관계는 가져도 됨’이라는 계약서 쓰고 결혼한 것임.

    그런데 스비드리는 계약을 어기거나 여자를 속인적은 없지만 그와의 사랑 문제로 많은 여자들이 자살했고, 스비드리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는 태도로 당당함. ‘나는 유혹만 했을 뿐이고, 평생 책임지겠다고 약속한것도 아닌데 자살한건 솔직히 내 탓은 아니지 않음?’이 스비드리의 태도임.

    하지만 여자를 인간대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유혹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태도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그의 주변에는 없다. 마지막에 흙수저 16살 미성년자와 약혼하는데 (나이차이 너무 난다고 주변에선 극혐하지만 흙수저 집안이다보니 막상 애 엄마는 스비드리를 구세주로 여김) ..

    마지막 꿈을 통해서, 어린 약혼녀도 본인에게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자살해버림.

    죄와벌의 많은 리뷰에서는 스비드리의 자살이 ‘주인공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유일한 증인인 스비드리가 자살해서, 증인도 없고 주인공이 자수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자수했다는 근거가 생긴거다’라고 하던데 ..

    스비드리의 자살이 주인공의 진정성있는 자수를 위해 필요했던 장치라는 말도 맞지만 나는 스비드리의 자살이, 여자를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던 남자들이 느끼는 공허함을 완벽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함.

    스비드리를 2025년 한국으로 비교하면, 여자를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픽업아티스트, 특히 여자들 상대로 공사치는 호빠남으로 비교하는게 맞다고 생각함.

    조금 틀린 비유긴 하지만 골드스푼 같은 소개팅 어플에도 비슷한 사람 많은데 .. 어플로 여자들 신나게 만나고 다니면서 관계하고 다니는 애들도 스비드리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 들었다.

    더 디테일하게 묘사하면 여자들 세자리수 만나고 관계하면서 몰카 찍다가 수사 들어오니까 자살해버린 윤모씨가 떠올랐음. 이것도 하려면 할말 많은데 심각한 주제라 여기까지.

    3. 라주미힌 – 헌신적인 인싸, 메이저 로스쿨 휴학생

    같은 흙수저 법대 휴학생인 주제에, 주인공한테 알바 일거리도 넘겨주고 착하기만 한거 같다가도, 친구 여동생인 두냐 보고 한눈에 반해버림. 근데 약혼남 있으니까 들이대진 못하고, 나쁜 약혼남 쫓아내는거(루진) 돕기만 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주인공이 두냐랑 엮어주니까 좋아서 어쩔줄 몰라함.

    주인공이 라주미힌의 친척인 수사관(예심판사)에게 살인자로 의심받으니까 팩트체크도 안 하고 주인공 무한실드 쳐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은 토론 상대로 만나면 힘들지만, 내 친구로 옆에 있으면 정말 든든하고 고마운 그런 사람임.

    라주미힌은 백퍼 ,, 도스토예프스키가 지랑 친한 친구 중에 한명 모티브로 두고 만든 캐릭터임. 나사 하나 빠져있는 친구 옆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성격도 유쾌해서 다들 좋아하는 성격이다. 나도 책 읽으면서 딱 떠오르는 친구 하나 있었다. 참고로 그 친구는 올해 결혼 예정임.

    4. ‘죄와 벌’과 소개팅 어플

    루진과 스비드리는 어플에서 흔히 보이는 남자들을 (여자 잘 꼬시는 부류, 못 꼬시는 부류) 양극단으로 나눈 캐릭터 같았다.

    돈 많고 스펙 좋고 만나보기 전까지는 엄청 대단해보이지만 막상 만나보면 매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캐릭터,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여자를 가스라이팅 하려하지만 그것도 실패하고 어플 게시판에서 여자들 욕하는 부류가 루진.

    여자들 잘 만나고 잘 꼬시고 다니는데 뭔가 공허하게 살아가는 캐릭터가 스비드리.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안 하는데 본인 유혹 때문에 파멸하는 여자들 보고 ‘지들이 선택한 문제임. 내 잘못 아님’ 이라며 죄책감도 못 느끼는거 보면 게시판에은 있는지도 모르고(불평할 일이 없다는 뜻) 열심히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부류가 떠올랐음.

    실제와 차이점을 보면, 전자(루진)는 책이랑 똑같이 어딜가나 불평불만만 하고 다니는거 같다.

    반면 후자(스비드리)는 소설과 다름. 스비드리는 결핍감을 느끼고 자살까지 하는데, 실제 사람들은 그 전에 결혼할 사람 찾기 시작하는거 같음. 소설은 도씨의 뇌피셜일 뿐이라고 비웃는듯 계속 여자 잘 만나고 다니는 경우도 있고. 결혼 안 한 남자 연예인들이 자살도 결혼도 안 하고 잘 사는 부류같음. (AKA. 화난다 나빠요 좋은직업)

    두냐 입장에서는 어플로 이남자 저남자 만나보다가 진정한 사랑을 만난거로 볼 수 있겠다 싶기도 함.

    잘 노는 남자 만나봤다가 한번 데이고, 돈/스펙 좋은 남자 만나봤다가 애가 돈 밖에 몰라서 또 데이고, 마지막에 조건은 별로여도 인성 좋은 진국 남자 만나서 결혼한 구도니까.

    근데 또 보면, 라주미힌이 조건 나쁜 흙수저처럼 나와도 실제로는 스펙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라주미힌이 법대 휴학생이라 별거 아닌거처럼 보여도, 현대시대로 대입해서 보면 SKY+서성한 로스쿨 휴학생임. 당시로는 대학생이기만 해도 엘리트로 쳐주고, 배경인 페테르부르크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특별시. 러시아는 영토도 넓으니까 서울특별시 안에서도 더 특별한 느낌. 그래서 그냥 인서울도 아니고 SKY+서성한 로스쿨 수준 아닐지.

    도스토예프스키도, 톨스토이도, 주인공은 존잘 존예던데.. 죄와벌에서는 ‘나름 스펙 딸리는’ 라주미힌도 명문대 로스쿨 학생이라 생각하니 ‘ㄹㅇ 흙수저’들은 어디서 공감해야한단 말인가 슬픈 감정이 들었음 ㅠ

    결론은 ‘죄와벌’에 나오는 남자들 전부 소개팅어플인 골드스푼 가입할 수 있는 스펙이라는거. (그렇다면 거기 가입한 여자들은(속칭 골스녀) 두냐냐? 그건 아닌거 같지만 …)

    5. 남녀 관점의 차이

    아내와 가장 의견이 갈렸던건 스비드리에 대한 관점 차이였다.

    아내는 스비드리를 그냥 쓰레기로 보고 깊게 생각하기도 싫어했다. 반면에 나는 스비드리가 나름 양면적인 캐릭터고,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짠하다고 했다. 아내는 걔가 왜 짠하냐고 짜증냄.

    스비드리가 짠했던 이유는, 실제 세상에서 저런 캐릭터는 자살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비드리의 ‘공허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결국 자살까지 시킨다. 자살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자살 전날밤 꿈을 두 번이나 꾸게 한다.

    앞의 꿈은 방에 쥐가 나오는 내용이었고, 두번째는 스비드리가 도와주고 침대에 이불 덮어준 여자아이가 갑자기 음란한 눈빛으로 쳐다길래 스비드리가 놀라는 꿈이었다.

    두번째 꿈이 암시하는 내용은, 마치 꿈이 스비드리에게 자살을 강요하는듯 했다. 네가 약혼한 16살 여자아이도 순수한것 처럼 보여도 너에게는 성욕해소의 대상일 뿐 너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 아닌가. 마치 너는 살아도 결혼까지 해도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꿈을 꾼 다음날 경비원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권총자살하는 스비드리가, 기생충에서 갑자기 칼부림하는 송강호처럼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공허함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그런 꿈을 꾸면 충분히 자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스비드리에 어느정도 공감이 됐고 스비드리의 자살에 몰입했는데, 아내는 남자를 타자로 보다보니 내가 짠해하는거에 공감이 안 됐던듯.

    쟤가 저래도 원래 애는 착한애였네 .. 이런 느낌? 자살 안 했으면 이새끼 양아치네 이랬을텐데, 자살까지 하는거 보면 감수성도 여린 애라는거잖아. 여자들이 이상한 페미니스트들 보면서 짠해하는 느낌이 내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6. 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인간의 머리속에 있는 하나의 감정을 하나의 등장인물로 바꿔버린 ‘우화’라는 주장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 우화 속 인물이, 실존인물처럼 느껴지게 하는 능력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탁월한 부분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찐따같은 면이 있고, 양아치같은 면이 있고, 또라이 같은 면, 헌신적인 면이 있다. 이걸 네 명의 캐릭터로 나눠서 각각의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처럼 느껴지게 하는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함.

    아내는 네명의 캐릭터 중에 나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또라이’를 담당하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라고 말했지만 내가,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넷의 성향을 모두 조금씩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편이라 읽기 힘들었지만 읽고나서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에 고전으로, 대문호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죄와벌을 최대한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하다보니, 전문의 따고 1년 가량 열심히했던 소개팅 어플 얘기까지 하게 됐다. 요새 미혼 남의들 그 어플 많이 하는거 같던데 공감가는 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서평

    모든 사람이 같은 1표를 갖는 민주주의, 여기에 회의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내용일줄 몰랐다. 적당히 죄 지은 청년이 참회하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심도있는 내용을 다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가가 아닌 철학자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철학에 대해 평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9세기의 유럽 대륙철학은 ‘나폴레옹에 대한 해석’과 ‘무신론’ 두 가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죄와 벌’은 이 두 가지를 다룬다.

    이전에 다른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재미있게 읽어줬던 아내여서,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책을 같이 읽었다. 나는 종이책, 아내는 전자책.

    처음 300페이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정말 읽기 힘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인물들은 전부 정신병자들이다’ ‘이게 왜 대작이지? 나중 가면 대작인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건가’

    같이 불평하던 아내였는데 상권을 먼저 다 읽더니 갑자기 호들갑을 떤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라고 어쩔줄 몰라한다. 나보고 빨리 읽으라고 난리였다.

    나도 힘들게 꾸역꾸역 상권을 마저 다 읽었는데, 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천재적이었지만 이건 한방에 머리를 크게 맞은 느낌.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도스토예프스키를 극찬했었는데, 소설인데도 문과가 아닌 이과가 읽으면 더욱 충격받을 내용이라는 느낌? 이과여서 더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은 느낌이었다.

    하권은 반면에 좀 더 인문학적이면서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종교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 문과 쪽보다는 이과 쪽 사람들이 더 좋아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내도 (여자치곤)완전 T 성격에 전형적인 이과출신이어서 나만큼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고, 이래서 내가 아내랑 결혼했지 하는 생각도 .. ㅎㅎ;

    책에는 이것 말고도 안티페미니즘 적인 내용도 있었고, 조던 피터슨이 떠오르는 내용, 한때 열심히 하던 소개팅 어플이 떠오르는 내용까지 하여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19세기 역사와 철학적인 흐름을 알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런거 모르고 2025년에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글 두세개 정도 더 써볼 수 있을것 같다.

  • 오징어게임2를 보며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던 이유

    (스포있음) 오징어게임2를 보며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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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며칠 전에 쓰려했던건데, 며칠 머리 식히고 이제 글 써봅니다.

    채식주의자가 떠오른 이유는, 별게 아니고 세계적으로 먹힐만한 작품이어서였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한국적이기까지 했네요.

    오징어게임 시즌2는 7부작입니다. 1화 평이 가장 좋고, 저는 2화가 개연성이 떨어져 별로였는데 3화부터 6화까지는 재미있게 봤고 7화는 다들 욕을 했죠. 대부분 비슷하게 평하는 듯 합니다.

    감독은 작품을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려 했던 것 같습니다. ‘625도 살아남은 장금자 여사’라던가 ‘월남전’에 대한 묘사가 그랬고, 트랜스젠더 배우가 전직 군인이었던 점은 3년 전 자살했던 변희수 하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넘어서 작품에 한국을 담고싶어하는 감독의 욕심이 느껴졌습니다.

    세계 보편적인 부분은 바로 투표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고있는 양당제의 폐해에 대해서 묘사하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게임을 계속할지 중단할지 결정하는 O, X 투표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묘사시켰고요. 다수의 결정에 전체가 연대책임을 지다보니 격화되는 갈등, 그리고 너 O야 X야 얘기하는 상황에서 1찍이냐 2찍이냐 묻는 최근 3년간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가장 결정적이었던 내용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상대를 ‘죽여서 없애는’ 모습을 통해 혐오 행동의 명확한 정의를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언어로서의 ‘혐오’는 일상에서의 ‘혐오’와 비슷합니다.

    ‘혐오’는 나에게 죽음을 불러올 수 있는, 그래서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더러운 것을 없애고 치워버리고 싶은 욕구입니다. 간단하게는 똥이나 오줌 가래부터,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정액도 있고, 위생 개념을 넘어서 나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들에게까지 혐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정적을 사람이 아닌 죽여도 되는 동물로 묘사한다던가 (쥐박이, 닭근혜) 공동체에서 추방해버린다던가(북으로 꺼져라)가 대표적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유대인을 절멸시켜버리려 했던 홀로코스트가 있죠.

    현실에서는 그래도 상대방을 죽여서 없앨 수는 없고,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경험한 서구권을 중심으로 혐오발언을 강력히 재제합니다만 .. 그런 통제를 없애고 혐오발언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한 묘사를, 오징어게임2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시청자와 해외 시청자들의 평이 갈리는 부분이 좀 있는거 같은데요. OX 투표와 같은 부분은, 국내 시청자들이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해외 평론가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겁니다.

    스포 글인데도 끝까지 다 읽은 분을 위해 말씀드리면, 오징어게임 시즌2 재미있습니다. 한번 봐보세요.

    그리고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타인에 대한 연민 (The Monarchy of Fear)

    정치적 감정 (Political Emotions), 저자는 둘 다 마사 누스바움.

    를 추천드립니다.

    사진은 오징어게임2가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고있다는 사실을 다들 느끼고 있구나 싶고 재미있기도 해서 첨부해봤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