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외전) 파업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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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전공의의 눈으로 목격한 2020년 의료파업.

4. 파업 후일담. (외전)

이대의대생-이대목동병원 전공의 간담회 (2020.09.10.)

연재를 계속하면서 파업 당시 자료들을 뒤져보면 저도 몰랐던 자료들이 나옵니다. 심지어 연재를 시작한지 1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국시거부, 동맹휴학으로 혈기만 넘치는줄 알았던 의대생들이 굉장히 날카롭고 이성적인 모습을요. 9월10일 파업종료 직후 있었던 이대목동 전공의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학생들이 제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더 많은걸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보다도 더 많이요.

어린줄로만 알았던 학생들이 놀랍게도 만들어진지 1주일도 안 된 9/3 범의료계투쟁특별위원회(이하 범투위) 3차 회의록의 내용을 숙지하고 왔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저는 당시 이 회의록이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이후에도 개략적인 내용만 알았지 단어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진 않았었거든요. 제가 몇달이나 지나서야 회의록을 분석하며 알게된 사실을 학생들은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다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해를 위해 3차 범투위 회의를 간략히 소개드리겠습니다.

9/4 합의문 작성 바로 전날 열린 9/3 3차 범투위 회의는 최대집씨, 박지현씨를 포함한 의협, 지역의사회, 의학회, 대전협, 의대협 등 여러 의료단체의 집행부가 참석한 회의였습니다. 대전협이 합의문 초안을 짰고, 의협에서 대전협 초안을 바탕으로 수정안(회의록의 원안)을 만들었습니다.

대전협에서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단 하나도 빠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대전협의 요구사항이 전부 담기면 그 외의 안건은 박지현씨가 전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합의를 위임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9월4일 최대집씨가 합의한 합의문을 보면 의.정, 의.당 합의서 제가 확보한 당시 대전협 초안의 6개 안 중 1개가 빠져있습니다.

대전협이 단 하나도 빠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1개를 빼먹은건 정말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 1개의 안 때문에 의협이 독단결정했다, 전공의들은 배제되었다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5가지는 전부 (제가 확보한) 대전협 요청대로 되었고, 전공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공공의대와 의대정원은 대전협 요구안이 합의문에 거의 그대로 실렸습니다. 대전협이 최종합의안 작성에 배제되었다고 하였지만 전공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의협이 대전협의 초안을 온전히 관철시켰던 것입니다. 대전협이 그 합의안에 동의할걸 알았으면 박지현씨 전권위임안은 가결되지 않았을겁니다. 전공의들이 대전협(박지현씨와 구비대위)이 전공의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제외된 1개 안도 ‘받아들이기 제일 힘든 안’이지만 주장할 ‘수’는 있다고 봐서 원안에 넣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사실 제 연재글의 주제를 딱 하나 뽑자면 바로 이겁니다. 전공의가 대전협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리고 재파업시 대전협 파업 지도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방법을 찾아야할 이유.

이 사실을 글로 풀어낼 정도로 정리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간담회에 참석한 몇몇 학생들은 1년도 더 전에, 1주일도 안 돼서 이 내용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전공의들 똑똑하다고 많이 말씀해주셨지만 학생들은 그런 전공의들보다 더 똑똑했던겁니다. 이대의대생 – 이대목동전공의 간담회 회의록을 확인하면서 이 사실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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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7일은 전공의들에게 대혼란의 날이었습니다. 대전협에서 실질적인 파업철회(단체행동 로드맵 1단계)를 선언하고 비상대책위원(이하 구비대위)들은 총사퇴하였습니다.

9월5일 서울시의사회에 직접 찾아간 많은 의사와 의대생들 덕분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던 결과였습니다. 최대집씨의 합의문 작성에 대한 박지현씨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대전협은 파업 종료.

구비대위 총사퇴 후 구비대위의 일원이었던 이대목동병원 대표 전공의(타교 출신 남자전공의)도 이 날 대표자리에서 사퇴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대표자리의 공석. 자원할 사람이 없으면 전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하겠다는 말에 피말리는 고민의 시간 끝에 저를 포함한 4명의 전공의가 공동대표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80%의 전공의들이 공동대표를 정식대표로 인정하였습니다. 4인 공동대표에 1명이 합류해 5인으로 집행부가 구성됩니다.

이후 제일 먼저 했던 것들 중 하나가 학생들과의 간담회 개최였습니다. 국시거부와 동맹휴학을 유지하고 있던 때입니다. 당시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 중 하나가 파업 진행사항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것. 엄청난 혼란 속에 정보가 없어 답답하던 시기. 전공의와 소통이라도 하면 답답함이 덜 할텐데 소통이라도 하고싶다는 의대생들의 의견이 들어와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참담하던 시기. 의대생들에게 고개를 들 낯이 없던 때입니다. 국시거부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토론하던 본4를 한명도 빠짐없이 전부 초대하고 싶었던 간담회. 하지만 코로나로 원하는 사람들을 반의반도 받지도 못했던 간담회. 회의에는 주로 파업당시 의견교류가 활발했던 3년차 전공의들과 사퇴했던 구비대위 이대목동병원 전대표, 그리고 예과 1학년부터 본4까지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순서는 진행을 맡았던 저의 현황정리를 시작으로 의대생 대표/자유 발언, 전공의 자유/대표 발언, 질의응답과 자유발언 순서였습니다.

전공의 파업종료에 관해서는, 이대목동병원 전공의의 2/3가 파업유지찬성 1/3이 유지반대. 하지만 몇개과가 무조건 복귀를 선언하면서 현실적으로 파업유지가 불가능해졌다. 로드맵 1단계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이후 있었던 의국장 회의에서 재파업시 조건부 이대목동병원 재파업 참여가 의결되었습니다.

의대생 대표는 9/9 충남대에서 40개 대학이 다같이 국시거부, 동맹휴학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대의대는 전공의 파업여부와 상관없이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의대생들의 현황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의대생 자유발언에서는 신비대위의 로드맵과 재파업 가능성 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전공의 재파업 여부가 의대생들 국시거부, 동맹휴학 유지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참여의 목적이 애초에 파업하는 전공의들을 지원하기 위함도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신비대위가 자체적으로 로드맵이 없었다는 것과 아산병원에서는 2주 뒤 시작한다는 구체적인 재파업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 아산병원에서 안 나서면 재파업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전공의 자유발언에서는 주로 의대생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이 나왔습니다. 의대생들을 남겨두고 병원에 돌아온 전공의들의 죄책감이 정말 컸습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많이 걱정해주고 계신 부분, 정신과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하신다는 내용들도전달됐습니다. 파업 후 대전협 회의에서 파업유지 부결에 학생을 버리자는거냐는 고성이 오갔다는 사실도 전해주었습니다. 이어서 학생들의 참여가 정말 고맙고 힘이되지만 본4들이 국시를 보면 좋을것 같다는 국시거부 본4동생을 둔 전공의도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어서 학생들의 질문시간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크게 두가지였던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단결 유지가 실질적으로 재파업에 도움이 될지, 그리고 재파업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였습니다.

저는 아산병원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재파업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50% 이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희망을 말해야 하는 대표의 입에서 50%라는 단어가 나오다니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생들이 그날 저녁 회의때 제 50%이상이라는 발언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제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더군요. 현실적으로 재파업은 힘들다는 의미 아니냐는.

재미있는건 이 뒤에 이어집니다.

구비대위였던 전대표 전공의가 갑자기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재파업 가능성은 90%라고 생각합니다.”

“8/7 처음에 단체행동 나가볼때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파업은 힘들다는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나올수 있을까? 교수님들이 보내줄까? 그 당시만 해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그런데 파업을 하게 되니 전공의들이 파업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재파업에 나갈 수 있는 확률은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 파업의 시작부터 대표를 맡아서 고생을 많이해주었던 전공의 선생님이지만 재파업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말에는 공감이 안 됐습니다. 저처럼 공감이 안 돼서였는지 구비대위 소속 전공의가 나오니 구비대위에 대해 질문할 기회라 생각해서인지, 갑자기 학생들이 전대표 전공의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있는 여러명의 의대생들이 앞에 서있는 전대표 전공의를 내려다보고 차례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질문은 점점 맹렬해졌고 그러다보니 간담회가 아니라 흡사 청문회의 분위기를 띠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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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했던 구비대위가 왜 1단계 파업(1단계 단체행동)이라는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9/5 대전협 회의했을때 왜 로드맵과 비대위원장 신임불신임을 묶었나? 전국전공의 투표는 왜 안 했나? 이대목동병원 전공의들의 의견은 왜 안 물었나?’

‘9/3 범투위 3차 회의록을 읽었다. 구비대위라고 불린 분들은 원점재논의라는 것도 알고, 4번항목(6개안 중 빠진 1개안) 빠질 것도 알고. 시행한다가 아니라 이행하도록 한다로 바뀔 것도 알았다. 그 과정에서 화를 낸 것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최대집 회장이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화살을 돌린다. 다음날 병원들 의견을 모아서 최종투표 해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건 지난일이라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갑자기 유한 표현들로 바뀌고 로드맵이 나온 것에 대해 설명해달라’

‘2차 범투위 회의에서 최대집에게 협상권 갔다. 3차 회의에서 내용 유하게 바뀔 수 있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범투위 끝나고 민주당과 얘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란거 아는 상황에서 대전협이 최대집에게 다 넘기고 갑자기 1단계로 바뀐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

‘3차 회의록을 봤는데 여기는 의결하는 자리라고 나와있다. 의결은 결정하는 자리다.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 추후 논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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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질문에 전대표는 대답을 했고 대답에는 다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일부만 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비대위 활동중이고 구신비대위가 협력하고 있다. 구비대위는 사실 강경파가 많다.

대전협 대표자 회의는 원래 9/7(월) 진행 예정이었다. 9/5(토)로 당겨진건 대표들의 요구때문이었고, 일정이 당겨져서 급하게 진행하느라 오해가 있었던것 같다.

미리 회의장소와 일시를 공지했기 때문에 밀실회의는 아니다.

4번항목은 건정심으로, 해야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철회도 넣어야된다고 의협 전달했다.

최대집씨는 처음부터 전권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회의에서 전권을 준다고 의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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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도 있고 틀린말도 있고 확인하기 어려운 말도 있습니다.

대전협이 공공의대등 정책 철회 요구를 해달라고는 했으나 위임한 요구안은 철회가 아닌 중단이었습니다.

밀실회의가 아니라고 했는데 당시 평전공의들의 참관은 2번 잠깐 문 밖에서 보여준것 외에는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그 외 질답과 관련된 회의록의 내용은 정리해서 사진으로 올리겠습니다.

대답 중 흥미로운 것은 9월7일 회의가 9월5일로 당겨진게 7일0시까지가 국시접수 마감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표자들의 요구 때문이었던 것이란 사실입니다. 국시접수와의 일정이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요. 9월5일 서울시의사회 난입사건 때문에 간담회가 늦어졌고 그 때문에 의대생들의 국시재접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정변경이 대표자들의 요구 때문이라는건 의대생들을 위해 간담회를 9월5일로 당긴게 아니었다는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사실 당시에는 7일 이후에도 국시접수가 연장될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7일0시가 국시접수 마감이라고 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7일 이후에도 국시원에서 의대생들 국시접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가접수가 무조건 가능할거라는게 당시 주된 의견이었죠. 하지만 뒤늦게 7일0시 이후 접수는 무효인 것으로 최종 확정이 되어 더 큰 혼란을 낳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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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학생들에 의한 구비대위 청문회가 벌어지는듯한 질답이 끝나고 서로에게 터놓고 발언하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전공의들은 의대생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다시한번 발언했습니다.

의대생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시를 쳐달라. 구제 안 해줘도 되니 간섭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래도 부탁한다. 죄책감이 들고 참담한 심정이다.

학생들은 다같이 버틸 생각이 있고, 1년을 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전공의들에게 ‘책임져줄 수가 없다’는 말만 들은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믿어달라고 말해줘서 용기가 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습니다.

이상의 대화가 끝나고, 간담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간담회 내용은 회의록으로 작성되어 이대목동병원 전공의 단톡방에 공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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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 연재에는 이 글이 반인듯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거든요. 연재가 갑자기 끝나도 하고싶은 말의 반은 끝내놓은 느낌입니다.

참고로 더 말하고싶은 주제는 박지현씨 전권위임, 그리고 가능하다면 9월5일 서울시의사회 사건 등입니다.

회의록과 당시 카톡 내용들을 확인해보니, 9월10일에는 재파업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대생 국시거부 문제가 그만큼 절박한 이슈였다는 의미죠.

구비대위와 신비대위가 서로 싸우면 재파업은 물건너간다는 마음에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던것 같습니다. 결국 신구 화합은 안타깝게도 완전히 물건너가버리긴 했지만요.

저는 이후 24기 대전협에 합류해서 열심히 돕다가 중도하차했습니다.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아직 대표를 맡고 있고, 파업당시 후원받은 후원금을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도록 후원자분들께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 물론 전문의 시험 공부도 하고있구요.

갑자기 연재 마무리 짓는 느낌인데 연재는 꾸준히 하겠습니다. 관심가져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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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Prologue. 한성이와 반성이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468004966613229

1. 의료파업의 첫 단추. 8월7일 대전협 집회.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491019247645134

2. 무겁디 무거운 가운을 벗은 날, 8월23일.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15153955231663

3. 가짜뉴스와 절대로 깨어져선 안됐던 믿음. (8/23~26)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43407369072988

4. (외전) 이대의대생-이대목동병원 전공의 간담회 (9/10, 파업종료 이후)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62596597154065

5. 추노, 보건복지부에서 온 노비 사냥꾼. (8/26~28, 8/31)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586703301410061

6. 밀실회의 (8/29~30)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34251673321890

7. 파업 종료 직전. (9/1~9/3)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67261516687572

8. 제3차 범투위 회의, 9.4합의 서명 전날의 회의. (9/3)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690056504408073

9. 의정, 의당 합의. (9/4)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713603208720069

10. 대전협회의, 서울시의사회 난입사건. (9/5)

https://www.facebook.com/qkrjiyong/posts/495085520166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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