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의료파업 해야한다는 분들에게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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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파업이라는 작은 불씨를 살리기 위해 몇 시간을 걸려 이 곳 서울의사회 회관까지 나왔습니다. 저희 병원은 아직도 파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과 교수님은 대전협도 끝내라고 했는데 너가 뭔데 파업을 계속하냐고 화내셨지만 그래도 저는 병원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파업을 끝내야한다는데 공감하게 됐습니다. 불씨를 살리려 하더라도 살릴 수 없고 다시 불을 피울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불씨를 나중에라도 다시 살리려면 불씨는 우리 손으로 꺼야합니다. 저는 파업 종료에 찬성합니다. “

2020년9월8일. 대전협 집행부가 로드맵1단계, 즉 사실상의 파업종료를 선언하고나서 바로 다음날 있었던 전국 전공의 대표들의 회의였다. 이 날 중간 조사에는 과반수가 파업유지에 동의했지만 최종 투표결과 103개 단위 중 93단위가 파업 종료에 동의해 2020년 전공의파업은 최종 종료되었다. 회의를 진행하던 신비대위 대표들 중 한명은 ‘우리를 믿는 본4 후배들을 버리자는 것이냐’며 절규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국시거부하는 본4들을 남겨둔채 파업은 그렇게 끝났다. 1)

윤정부의 의대정원 1000명 이상 증원설이 기사화 되면서 의사들 사이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의사 커뮤니티에 새로 올라오는 글의 양을 보면 2020년 파업 이후 단연 최대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면 파업할 때가 생각날 정도다. 그렇다면 파업을 하게 되는걸까? 나는 파업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파업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파업에 대한 리뷰는 할 자격이 있는 듯해 글을 써본다.

애초에 대전협은 파업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다. 대전협은 전공의 권익에 관심이 많은 전공의들이 의협이나 정치인들과 접촉하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가까웠다. 파업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권한도 없었다. 파업하는 전공의를 보호할 권한도, 참여하지 않는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을 줄 권한도.

어떠한 법적 권한도 없는 대전협이 전공의 단체행동을 이끌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2020년 파업이 끝나고 3년간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여러 이론을 공부했다. 권력과 정치에 대해 연구한 나치법철학자 칼슈미트, 전공의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알아야만 했던 공산주의이론, 정의를 논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롤스, 일선 전공의들의 분노를 대변하기 위해 필요했던 감정의 연구자이자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등.

1. ‘바른마음’을 쓴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윤리 value가 있고 중시하는 value가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의견에 결코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 의사들을 놓고 보면 ‘환자를 살리는 의사의 의무’를 중시하는 전공의가 있고 ‘경제적 유인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의사의 현실’을 중시하는 전공의가 있는데 두 전공의들이 본인들의 세계관을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하다.

2020년 파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두 부류의 전공의들이 모두 문정부에 반대할 정도로 그 정책이 잘못됐다는데 있다. 당시 대전협 회장이었던 박지현씨는 이전 대전협 회의때 불명확한 이유로 한복을 입고 참석하곤 했는데 (보통 이런 사람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의 의무’를 중시하는 부류다) 이런 사람마저도 문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두 부류의 의료정책에 일치단결해서 단체행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파업을 주장하는 이들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의 의무’를 중시하는 전공의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이와 더불어 의료에 관심없는 대중들 중 50%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2020년에는 모두 이루어졌던 부분이며 특히 전자의 경우 당시 대전협이 탁월하게 수행해냈던 역할이다.

2. 2020년 의료파업은 사실 파업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단체행동’이었고 달리 표현하면 ‘불법 파업’이었다. 당시에도 전공의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펑션하지 못했고, 파업 직후 치러진 대전협 회장선거에서 두 후보가 모두 ‘병원별 전공의 노조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

2020년 파업 종료에 벌어졌던 혼란을 의사와 의대생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꿈에도 꾸지 않던 갑작스러운 합의 결정과 이를 두고 벌어진 최대집 의협 전회장과 박지현 대전협 전회장의 다툼. 둘 중 누가 정부와 물밑 협상한 배신자냐로 갑론을박했지만 결론은 둘 다 협상에 동의했고 둘 다 배신자가 아니었다.

사실 협상에는 유지해야할 비밀이 있고 거기에는 구성원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길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구성원들이 지도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이 아쉬워도 이내 수긍하고 만다. 하지만 2020년 의사파업은 전혀 그러지 못했으며 수뇌부였던 의협과 대전협은 엄청난 비난에 휩싸인다. 의협의 합의문 서명에는 전공의들이 육탄방어로 합의를 막으려했고, 대전협의 파업 종료 투표에는 수십명의 의사와 의대생들이 회의장을 밀고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으로 합의해서가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파업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은 보통 노조 지도부가 진행하는데, 노조 조합원들은 법에 의해 보호받지만 당시 전공의들은 합법 파업이 아니었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굳이 업무개시명령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상급자인 해당과 교수에게 강한 비난을 받은 전공의들이 많았는데 이 또한 대전협이 전공의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대전협에 항의하던 전공의들의 주된 주장은 ‘내가 이렇게 교수님들이 화내는거 버텨가며 나왔는데 왜 당신들 마음대로 파업을 끝내냐’는 거였다.

이렇게 전공의들이 보호받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전협의 의견수렴 및 의결시스템 때문이었다. 전공의들은 원내 전공의대표를 통해 대전협에 의견을 전달하고 의결할 수 있었으며 이는 ‘단위’라는 정량수치로 반영되었다. 수련병원 별로 전공의 100명 이하에 1단위, 100명부터 199명까지는 2단위, 그 이상은 100명마다 1단위씩 추가되는 시스템이다.

전공의들은 이러한 의결시스템을 믿고 대전협의 지휘에 동의했지만 결국 깨닫게 되었다. 파업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협상하는 지도부는 협상 과정에서 의사들이 원치않는 합의문에 서명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노조 없는 파업은 결국 ‘배신자’를 낳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대집이 배신자라는 주장은 3년간 지속되었고, 소송이 끝난 덕분에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3)

3. 그렇다면 정답은 노조인가? 이 또한 쉽지 않다. 병원별노조 설립 노력은 2020년 대전협 회장에 당선된 한재민 전회장 때부터 지속되었다. 노조설립은 쉽다. 회장, 부회장, 총무 3명만 있으면 나머지는 대전협에서 다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노조가 세워진 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병원별로 전공의 3명만 있으면 된다고 해도 다들 ‘그 3명’이 없다는게 이유였다.

또 병원별 노조가 설립되면 다 되는가? 이 또한 쉽지 않다. 파업 당시를 생각해보면 소위 빅5 병원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했다. 이 병원들에서 병원별노조가 설립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4. 그래서 답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넥스트메디신, 메디스태프 같은데에 글 올리는 사람들은 알까? 그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하고,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직 없기에 던져본다.

주권자(Sovereign)는 예외상황을 선포하는 자이다. 나치 법철학자 칼슈미트가 한 말이다. 파업을 강력히 원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라면 누군가가 예외상황을 선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지금이 그런 환경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이전의 페이스북 포스트에서 의사부족 보고서에 대해서 검토한 글을 수차례 올렸었고, 보사연의 ‘2035년 의사 2만7천명 부족’ 오류를 지적해서 ‘2035년 의사 9천명 부족’으로 수치를 고쳐보게까지 했다.

나는 ‘옳은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옳은 주장을 ‘관철’시키는데 관심이 많다. 정확한 수치는 아직 미정이나 ‘의대 1000명 증원’ 사태에 대해서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지 어떤 대처가 이뤄질지 궁금하다. 다만 그저 단순하게 ‘파업합시다’ ‘대전협은 뭐하고 있나’라는 말로는 파업이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1) 대전협 신비대위도 9일 오전 7시 병원 복귀 결정, 19일만에 전공의 파업 마무리

https://medigatenews.com/news/2546755367

2)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수련병원별 전공의 노조 설립하고 전공의법 개정으로 수련비용 지원

https://m.medigatenews.com/news/1327523471

3) 2020 의사파업 후 진행된 소송 정리

https://blog.naver.com/jy_iruon/22318413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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