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사게시판 막말 수사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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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화권력으로서의 관점. ‘수사의뢰’가 황당한 이유

– 정부 측 언플에 대한 대응 방안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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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태프라는 의사, 의대생 전용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익명성이 아주 강한 커뮤니티입니다. 다른 유명 익명 커뮤니티와 비교해도, 메디스태프의 익명성은 압도적입니다.

일베나 펨코, 여시같은 익명 커뮤니티는 경찰 수사가 진행될 때 게시자의 개인정보가 경찰에 제공되는데요, 메디스태프는 경찰에 개인정보 제공을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거든요. 메디스태프는 원래도 서버를 외국에 둬서 경찰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올해 전공의 사직사태로 서버 압수수색까지 벌어진 후에는, 게시자가 누구인지 운영진조차 모르게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익명성 기반의 커뮤니티다보니, 메디스태프 게시판에는 다른 익명 커뮤니티처럼 막말이 오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반인이나 환자들에 대한 욕설을 올리는 경우도 있죠.

저도 익명의 메디스태프 유저들에게 괴롭힘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제 실명이 부당한 이유로 메디스태프에 올라와 입에 올리기 힘든 수준의 쌍욕을 먹었는데, 수위가 너무 높아서 모욕죄로 고소할까 고민까지 할 정도였거든요. (참고로, 메디스태프 서버 압수수색 전이어서 고발하면 처벌도 가능합니다)

정부가 메디스태프 게시글을 트집잡은 것도 이것을 이용한겁니다. 익명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말이 너무 험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깐요.

문제는 정부의 ‘발화권력’에 있습니다. 논의의 장에 안건을 올리고, 사람들이 해당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며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최소한의 ‘근거 수준’을 가져야합니다. Level of Evidence라고 하죠.

예를 들면, ‘대통령이 의사를 사형시켜야한다고 얘기했다’와 ‘디씨인사이드의 익명 유저가 의사를 사형시켜야 한다고 얘기했다’의 무게는 다릅니다. ‘의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혐오가 극에 달했다’고 주장하기에 대통령의 발언은 충분히 근거가 될 만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근거로 대기에는 많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는, 논문이나 정부 제출용 보고서를 쓸 때 ‘익명의 네티즌이 의사를 욕했기 때문에 의사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주장하기에는 뭔가 이상하죠.

그런데 익명 네티즌이 쓴 게시글의 ‘근거수준’을 드라마틱하게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사화입니다. 익명의 네티즌이 쓴 글도, 유명 언론에서 기사로 쓰게 될 경우에는 ‘일부의 일탈’이 아닌, ‘광범위하게 퍼진 혐오’로 인용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여성혐오 발언이 되겠죠. 인기글에 오르지도 못했고, 조회수 10개에 추천 0개의 글도 언론이 기사로 써버리면 ‘여성혐오가 광범위하게 퍼진 근거’로 사용될 수 있게 되는겁니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있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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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기자들이 우리들의 목소리를 기사로 안 실어주는데 어떡하란 말이냐’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물론 기사화에는 기자와 데스크(언론사)의 주관이 크게 좌우하겠지만, 안 되는것도 기사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인시위, 단체시위, 고소, 고발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이 관심갖기 쉽게(보통 욕하기 좋게죠) 자극적인 워딩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고요.

가장 쉬운 방법이 고소 고발하는건데요. 고소 고발 사건에는 항상 기사화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일단 고소 박아버리고 언론사 연락해서 이런이런 내용으로 누구를 어디경찰서에 고발했다 알려주면 빠르게 기사화됩니다. 의사 중에 이 방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분이 지금 의협 회장인 분이시고요, 제가 만든 공의모라는 단체도 이 방법을 가끔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고소 고발도, 최소한의 요건은 채워야합니다. 애초에 문제가 없는걸 고발해도 기사화는 되겠지만, 터무니없는 이유로 고발하면 뭐 이런거로 고발하냐 행정력 낭비다라며 사람들이 비웃겠죠. 경찰서에서 고발을 만류할 가능성도 있고요.

메디스태프 막말에 대해서 정부가 ‘고발’이 아닌 ‘수사의뢰’를 한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애초에 고발거리가 안 되거든요. 죄가 아니니까요.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수사의뢰 했다는데 저게 응급의료법 위반이라는데 동의하시는 분 계신가요?

해당 게시물이 막말이고 읽는 사람은 충격받을만한 내용이긴 하지만, 저게 불법이면 펨코 여시 유저 중 수십만명은 진작에 경찰 고발돼서 유죄 나와야합니다. 근데 그렇진 않잖아요?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까 고소 고발 대상이 아니고 그래서 ‘수사의뢰’를 한거거든요.

웃긴게, 수사의뢰란게 절차도 별게 없습니다. 그냥 공공기관에서 경찰서에 공문형태로 수사 요청하면 그게 수사의뢰더라고요. 또 정부가 ‘수사의뢰’를 하니까 어떻게 기사화가 되기는 합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의사들의 막말’ 자체가 욕하기 좋고요, 또 정부가 경찰에 수사의뢰한 사건이니까 기사화할 명분까지 있어서였겠죠. 정부에 ‘발화권력’이 있으니까 가능한 언론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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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 ‘의사 커뮤니티 막말, 정부 수사의뢰’ 기사 보자마자 똑같은 방법으로 기사화를 준비했습니다. ‘수사의뢰’가 진짜 별게 아닌데 그걸로 정부가 기사화하고 언플한거니까 저도 ‘수사의뢰’ 공문 보내고 기사화만 하면 되는거죠.

익명 커뮤니티 막말에 의사들도 많이 상처받는데 의사들이 가해자로만 비춰지게 만드는거 같아서 억울하기도 하더라고요. 고발도 아니고 ‘수사의뢰’로 언플하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관련자료 전부 정리해놓고 메디컬지 기자님들께 기사화 가능하다는 답변까지 받은 상태에서 보도자료까지 다 써놨는데, 그냥 중단시켰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몇시간 토론 끝에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의사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의사들 괴롭혀서 생활고로 몸까지 팔게 만들어야한다’는 글이 있는데, 이거 수십명이 뒤져본 결과 원본없는 ‘카더라’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본을 봤다고 기억하고 계셨지만, 실제로는 원본이 없었고 ‘스누라이프에 이런 글이 올라와서 화났다’는 내용의 인기글(추천수 340개)이 유일했습니다.

둘째. 발화자의 레벨이 맞지 않는다. 메디스태프는 SE status가 높은 의사들만 쓰는 커뮤니티지만, 다른 커뮤니티는 잡탕이다. 디시 같은데에 눈쌀 찌푸려지는 저질 댓글들이 있지만 디시에 이런글 올라오는게 한두번이겠습니까. 디씨 익명글을 문제삼으면 의사가 디씨 유저들과 같은 수준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셋째. 너무 심한 글은 오히려 의사가 썼을 가능성이 있다. 의사들이 여론몰이 하려고 일부러 의사 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심하게 욕하면 그건 아니라고 반발하니깐요. 의사들도 반대로 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을겁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죠. 근데 만약 언플해서 경찰 조사까지 들어갔다? 근데 알고보니 의사가 쓴거다? .. 감당하기 어려울겁니다.

넷째. 레벨이 맞으면 발언 수위가 심하지 않다. 스누라이프, 고파스, 세연넷 같은 SKY 재학생/졸업생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글도 있지만, 발언의 수위가 ‘사형’ ‘총살’ 수준에 그쳤습니다. (윗 문단에 언급한 수준 정도면 언플 할만하지만 이 정도론 조금 모자라죠) 그리고 이들이 정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다섯째. 구도가 나쁘다. 정부 측의 언플은, 정부가 의사를 공격하는 모양새인데, 의사가 익명 커뮤니티 글을 대상으로 공격하면, 정부대 의사에서 의사대 국민의 대결구도로 옮겨가게 됩니다. 기사화 되면 속시원한 의사들은 있겠지만 크게 보면 의사들 속시원하게 하자고 국민 여론을 악화시킵니다. 현사태 해결은 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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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정부 언플에 당하기만 하냐, 우리도 똑같이 대응하자는 글이 메디스태프에 많더라고요. 저도 정부가 다른 것도 아니고 익명 커뮤니티 글로 언플하는거 보니 황당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언론화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위의 문제점을 무시하고 언론화를 진행한다면 의사들 사이에서 저희 모임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좋겠죠. 화난 의사들 속을 시원하게 해줄테니까요. 커뮤니티에는 잘했다며 칭찬하는 글도 많이 올라올겁니다.

하지만 사직사태 해결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나중가서 모임의 이미지도 나빠질거고 회원 결속력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하니 장기적으로 보면 악수입니다. 의사들 사이에서 인지도 높여서 의협회장 당선되는게 목표라면 해볼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추구할만한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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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발화권력 얘기를 하다보니,, 익명 커뮤니티 게시글로 언플하는 모습은, 페미니즘 이슈 관련해서 이런저런 고민 많이하던 제게는 익숙한 장면이었습니다. 애초에 중요한 의미가 없는 일을 어찌어찌 기사화해서 제도권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정부 정책까지 바꿔놓는 모습이요. 그러다보니 발화권력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도 참 많고 .. 참 하고싶은 말이 많네요.

그나마 의사들은 여성단체를 상대해야하는 이대남들 보다는 발화권력이 강한 편입니다. 의사들 의견을 적극적으로 실어주는 메디컬지도 여럿 있고요. 그러다보니 의사들 쪽에서는 어떻게 대응 방안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올해 전공의 사직사태로 전국민 관심사를 이 쪽으로 돌린 상태다보니 의사들의 목소리를 다들 경청해주고 있는 상태잖아요? 김은식, 김유영, 박재일, 한성존 이 선생님들의 성함은 올해 처음 들었는데요. 이런 개별 전공의 선생님들의 발언이 이번 사태가 아니었으면 조명을, 그것도 공중파로까지 받을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의사들의 목소리가 역대 최고로 주목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누워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은 많이 아쉽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된건가 생각하다 화가 나기도 하고요. 의사들이 의료제도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냥 의미없이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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