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집을 사라. 실거주 한 채는 진리다. 마흔을 앞두고 그동안 매년 듣던 말이다. 재테크 관점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파트가 아무리 우상향한다 해도, 과열된 상태에서 진입하면 수년간의 잠재비용이 매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또래 중에는 애매한 시점에 자가를 사서 아직도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집을 사고 나니 관점이 바뀌었다. 일단 집을 사라. 실거주 한 채는 진리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하며, 일부가 다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자유에 아직 미숙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서울에 자가를 사는 것, 특히 1주택 실거주자가 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되는 방법이다. 이 집단은 한국의 권력을 쥔 이들 대부분을 아우를 뿐 아니라 머릿수까지 많아서,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누구에게 권력을 쥐여줄지 좌우할 영향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은 이들의 눈치를 보며,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피해가 가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
문재인 집권 5년간 격분했던 2030으로서(참고로 나는 문재인을 찍지 않았다) 윗세대와 우리 세대의 간극이 가장 크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4050 중에는 문재인의 5년을 무척 평화로운 시간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미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지원금이 뿌려지고, 물가가 오르고, 집값이 치솟아도 ‘어차피 팔 것도 아닌데 올라봐야 좋을 거 없다’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아비규환에 놓인 무주택자로서, 같은 나라의 같은 5년이 나이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몇 살에 문재인을 만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유행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대한민국이 머릿수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다수결 사회이며, 그 다수결에서 늘 승리하는 쪽은 연령별 인구가 가장 두터운 4050(지금은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일찍 태어나 적절한 시점에 문재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수가 많았기에 문재인이 그들의 삶을 여유롭게 만들어준 것이다.
20대가 주도했던 초기의 올림픽공원 시위는 이러한 불만이 응축된 결과였을 것이다. 정작 본인들은 왜 불만이 쌓였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구 비중이 너무 적은 탓에 정치인들이 내거는 공약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정치적 효능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에 결국 한국 사회 전반을 부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젊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강하다고 한다. 민주주의 체제가 머릿수 많은 50대의 입맛에 충실히 맞춰지는 반면, 2030의 세계는 정치인들의 고려 바깥에 놓이기 때문일 것이다. 2030의 입맛을 맞추는 사람은 앞으로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을 쥐기 어려울 것이다.(2030 비위를 맞추는 척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겠지만 실제로 50대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맞추는 정치인은 없었고 없을 것이다)
서울 아파트를 사라. 실거주 자가로 등기를 쳐라. 이 말은 이제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상향하는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부가 정권에 상관없이 챙겨주는 5060 기득권과 최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고, 그들과 경제적 이익 공동체가 되라는 뜻이다. 이길 수 없다면 친구가 되어라.
한편으로는 서울 아파트를 사지 못하던 시절이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그들이 3억에 사던 아파트를 나는 15억에 사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사회인가. 나는 불합리한 사회라고 본다. 처칠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최악이지만, 그보다 나은 차선은 없다. 다만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정치 체제보다 더 나쁜 것이 되는 순간이, 어쩌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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