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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혐오와 자유주의 1

‘전라디언의 굴레’라는 책을 샀는데, 집에 놔둔 책을 아버지가 봤다. 아버지가 바로 불쾌해하면서 한마디 하셨다. ‘저거 전라도 욕하는거 아니냐?’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어서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었다.

책은 전라도를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저자부터 전라도 광주 태생의 기자출신 작가였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라도 사람들의 포지션과 그러한 포지션이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정리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적인 책 제목에 아버지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9급출신 공무원으로 1급(차관보)까지 승진했다. 주변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가 본인의 장점을 잘 알고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가려는 노력이 잘 풀린 덕분이었던것 같다. 아버지가 소원이라고 말했던 장관(혹은 장관급 공무원)이 되는데에는 실패했지만, 주변에서 볼때에는 굉장히 출세했던건 맞다.

어머니는 경남 출신이었는데, 항상 하는말이 있었다. ‘너희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 아니었으면 훨씬 출세했을거다. 1급은 진작에 달았을거고 아마 장관까지 될 수 있었을거다’는 얘기였다. 1급 고위공무원까지 됐는데 아버지가 차별을 그렇게 받았으려나? 했지만, 어머니도 공무원이었으니만큼 나한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딴 얘기를 하면 어머니가 경상도 출신이니만큼, 친한 사람들도 경상도 사람이 많았는데 그 안에서 남편이 전라도 사람이라고 은근히 눈치보이는 상황이 많았다고 한다.


나랑 나이차이가 한창나는 큰 사촌형은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 명문대에 진학했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직업도 굉장히 좋았다. 명절때가 되면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전부 우리 시골집에 왔다. 30~40여 명의 어른들이 사촌형에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풍경이 매년 2차례씩 반복됐다.

사촌형들이 어른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존중을 받는걸보고, 나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가면 저렇게 될거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큰 오해였다. 서울대는 아니었지만 우리 연령대에서는 서울대보다 어려운 의대에 진학한 내게 어른들은 기대와 달리 관심이 전혀 없었다. 여전히 사촌형이 중심이었고 사촌형을 둘러싸고 수십명의 어른들이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

그제서야 알았다. 사촌형이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 어른들이 관심가진게 아니었단 사실을. 판검사라는 사촌형의 직업 자체가 그 이유라는 것을. 정치는 너무나 밀접한 주제였고 어른들이 사촌형에게 묻고 답변받는 것은 전부 정치 얘기였다는 것을.

그런 사촌형에게 어른들이 질문했던 내용이 있다. (부산지검으로 발령났을 때였다) 경상도에 가면 전라도 사람이라고 차별받는 것 아니냐? 사촌형은 대답했다. 검찰은 선진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전라도 사람이라고 차별하는 것은 전혀 없고 본인도 전혀 불편한 것 없다고. 어른들이 다시 대답했다. 차별이란 것은 눈치주고 괴롭히는게 아니고 결정적인 순간에 진급에서 배제시키는 그런 것이 차별이라고.

어머니도 그런 어른들 말씀에 공감하셨을거 같다.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만 아니었으면 더 출세했을거라 말씀하셨으니. 일베에서 말하는 ‘호뽑뽑요(호남사람은 뽑지말며 뽑더라도 요직에쓰지말라)’ 같은 말에 사람들이 예민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전라도출신의 중장년/노인층이 직접 경험했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사람이라는 어머니와 전라도 사람이라는 아버지의 정체성은 가끔 충돌하곤 했다. 대부분의 상황은 정치 이슈에 대한 주제를 피함으로 이루어졌다. 두 분 모두 정치나 정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는 높았지만 부모님은 내게 항상 정치얘기는 나중에 칼이 되어 돌아오니 절대로 정치얘기를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셨다. 어찌보면 자유주의와 정반대되는 이야기였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64

All posts on this site are written by Jiyong Iruo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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