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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하고 의사가 된다면, 응급상황에 환자를 위한 처치들을 침착하게 그리고 재빠르게 할 수 있어야하잖아. 그런데 그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환자의 고통에, 보호자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건 할 수 있겠지만, 함께 슬퍼하느라 의사가 해야할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돼 “

본과3학년(의대 6년제 중 5학년) 병원 실습 돌던 때였다. 같은 조의 누나는 성격은 참 착하고 좋았는데 종종 자신의 실력을 자책하곤 했었다. 졸업해서 대학병원에서 학생들의 스승 역할을 하던 전공의 선생님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침착하고 그리고 재빠르게 해냈었다. 그런 선배들처럼 나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의대생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신경외과 1년차를 인계받으면서 기억나는 것은 응급실에서의 우리과 4년차 선생님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환자상태를 확인한 뒤 각종 오더를 내고 전공의가 해야할 일은 보호자 설명이었다. 4년차 치프 선생님은 옆방에 누워있는 뇌출혈 환자의 CT영상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보호자를 부른 뒤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많은 뇌출혈 환자들이 그런 것처럼 이 환자도 가망은 없었다. “수술이 필요하지만 수술해도 결국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의식이 깰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신경외과 뇌출혈 환자들은 의식을 잃기 몇시간 전까지 멀쩡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남편이, 아버지가 의식을 잃더니 위독하고 수술을 해도 결국은 사망한다는 의사의 설명은 그야말로 사형선고다. 설명을 들은 보호자들은 오열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의사의 마음을 흔들기까지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울음에 새내기 신경외과 의사였던 나는 동요했다. 응급실에 왔으니 의사가 살려주겠지 희망을 품고 의사를 기다렸던 보호자들에게, 가망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은 의사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보호자들의 오열에도 치프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해야할 모든 설명을 차분히 마쳤다. 나는 보호자들이 울든말든 동요하는 모습 전혀 없이 설명을 이어나가는 그 모습이 조금은 사이코패스 같다 싶으면서도, 결국 내가 따라야할 프로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나 또한 업무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내 설명에 오열하는 보호자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호자들의 울음소리는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였고, 나는 의사로서 마땅히 수행해야할 업무를 빈틈없이 완수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업무 특성상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뇌출혈이 일으키는 갑작스러운 뇌압상승은 가족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환자를 데려가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가족을 떠나보내게 된 사람들의 슬픔을 다루는 것도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다루게 되면서 전공의들은 죽음을 나와는 관련 없는 일처럼 느끼게 된다. 타인의 죽음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신경외과 전공의는 환자의 죽음과 보호자들의 슬픔에서 점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보호자들과 면담할때 가끔은, 슬픈 영화를 보거나 비극 소설을 읽는것 같은 기분을 느낀적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짧은 시간 안에 다독여드리고 업무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어떠한 컴플레인도 나오지 않게 만든 내 자신을 유능하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적도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에, 슬픔으로 가득한 그 감정에 몰입하지 않는 것이 업무적으로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드리는 것도 내게는 중요한 업무긴 했지만, 일할 시간에 슬픔에 몰입하게 된다면 업무에 지장을 받고, 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돕는데 방해가 될 것만은 자명했다.

그러다가도 한번씩은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 몰입하게 된적은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뇌출혈 환자에게서였다. 두 분 다 깨어날 가능성은 결코 없는 환자들이었다.


한 환자는 60살 정도의 어머니였다. 수술을 했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었다. 무의미하다면 무의미할 수 있는 연명치료 상태. 항상 그렇듯이 면회시간에는 보호자들이 중환자실에 들어왔고, 그들에게 어머님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며칠간 바쁘다는 이유로 몇몇 중환자실의 보호자들에게 설명을 못 했었다. 그래서 이 어머님의 보호자들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 만나보게 된 보호자들은 내 또래, 30살 가량의 두 아들이었다.

걱정하는 두 아들들에게 어머님의 상태를 설명하고 (결국은 가망이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전해질 수치라던가 염증 수치같은, 의식 회복과는 거리가 먼 수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같은 솔직히 말하면 크게 의미는 없는 설명에도 항상 설명에 목이 마른 보호자들은 크게 만족하곤 한다) 이내 아들들에게서 나와 비슷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나도 남동생이 있어 아들 둘 집이었다. 심지어 보호자들도 아들 둘에 나처럼 두살 터울이라고 했다. 환자인 어머니도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다. 순간 내가 그 두 아들 중 첫째 아들이 된 기분이 되었고, 나의 어머니가 저렇게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상황이 상상되고 이내 몰입됐다. 나도 모르는 새에 몰려드는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 급하게 중환자실을 떠야했다. 더이상 의사로서 차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 가망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과 보호자들이, 아들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던 기억이다.


두번째 기억은 혼자 중환자실 회진을 돌 때였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중환자들은 실제 중환자들과는 차이가 크다.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그들 입에 물려진 플라스틱 관은 실제로는 드라마처럼 깨끗하지 않다. 입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관 속은 담당간호사들의 지속적인 보살핌에도 가래로 더럽혀져 끈적끈적한 거품이 보인다. 얼굴은 당연히 엉망이다. 입은 관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테이프 몇 장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기관삽관으로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환자 그림. 실제로 구글링되는 기관삽관 환자는 전부 말끔하게 씻은 상태로 실제 환자는 없어보였다. 출처는 EMRA공홈.

면회시간이 끝나고 한참 지난 중환자실에는 환자들과 의료진 밖에 없지만, 보호자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의식이 깨지 않을것이라 들었음에도 그들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보호자들의 흔적이다. 힘내라는 의미의 작은 물건이라던가, 편지, 가끔씩은 어린 아기들의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락받았는지 ‘사랑한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있기도 하다.

사진 한 장에는 큰 힘이 있다고들 한다. 50살쯤 되어보이는 중년의 여자환자는 홀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플라스틱 관이 입에 물려져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플라스틱 관 안에는 수차례 석션에도 마저 빨려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가래침이 묻어있고, 벌려져있는 입 주변은 침으로 범벅이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머리맡에 ‘힘내라’는 가족들의 편지 옆, 환자의 이전 사진은 내게도 망치로 머리를 내리친 것처럼 큰 충격이었다.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었을까. 생명력을 뽐내는 초록색 풀과 나무를 배경으로, 환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처럼 부어있지도, 침으로 더럽혀지지도 않은 깨끗하고 화사함이 사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런 싱그러운 미소였다.

내가 아는 환자의 모습은 응급실에서부터였다. 의식을 잃은 상태의, 응급의학과에서 이미 기관삽관을 해놔 생명 유지의 끈을 인공호흡기에 맡겨놓은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환자의 모습은 그게 전부였다. 반면 가족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그리고 간절히 돌아오기 바라는 모습은 사진속에서 화사하게 웃고있는 엄마렸다.

그 순간 눈가가 빨개져 눈물로 젖어있던 보호자들의 마음에 몰입됐다. 주말 오후, 중환자실 환자들 상태 확인하러 이제 막 돌기 시작했는데 .. 목이 메어왔고, 이대로는 옆에 서있던 담당 간호사와 대화할 수가 없다. 눈이 눈물로 젖기 전에 급하게 중환자실 안의 신경외과 당직실로 들어왔고 우느라 사진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30분 가량은 당직실에서 나올 수 없었다.


레지던트의 삶은 고되고 타직역의 또래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극한까지 밀어붙여지는 경험을 겪게된다. 그런 환경 탓에, 전공의들은 환자나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와 싸우게 되는 일이 참 많았고 나 또한 그랬다. 심지어는 섬망 증상으로 중환자실에서 새벽내내 소리지르는 환자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수면의 기회를 빼앗기고 이성을 잃어서, 제정신이 아닌- 그래서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음이 명백한 환자의 귀에다 대고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 경험마저 있다.

레지던트들이 흔히 겪는 극한에 몰리는 환경은, 환자에게 그리고 보호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곤 한다. 나도 나름대로 친절하고자 노력은 했지만 모든 보호자가 만족할만큼 친절한 의사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꿈꾸던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사, 보호자에게 감동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최근 환자가 되어 입원, 수술을 받은 한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사실은 나도 응급실에 두차례 갔던적이 있고, 의사들이 보호자에게 해주던 설명을 그대로 들으며 ‘동의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동의서에 사인하던 환자의 한마디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도한 감정소모로 업무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험이 멋지다거나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환자가 된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이전 기억이 떠오르고, 내 기억속에만 남겨놓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본다.

2024년 현재, 만여 명의 전공의들이 사직으로 병원을 떠나있다. 그들이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서 병원을 떠나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전공의들은 의사가 환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다면 환자들에게 돌아오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현 사태가 더 장기화되지 않고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42

본업 얘기 두번째, 디스크 수술 본업 얘기 두번째, 디스크 수술 병원생활 병원생활 30대 초반 젊은 남자분이 진료실로 들어오는데 다리를 절뚝이면서 오십니다.

저는 척추 위주로 진료를 보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대부분 디스크 때문에 오신거죠.

특히 젊은 분들이 방사통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시면 수술까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방사통 없이 허리만 아픈 분들은 수술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엑스레이 찍어보고, 문제 있어보이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드리며 여기가 문제인거 같다 설명드리고 이어서 진행한 MRI 영상을 보니 터져나온 디스크 양이 굉장히 많습니다.

양이 적당히 많으면 통증주사나 아니면 시술로 해결해보자고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신경이 꽉 낄 정도로 디스크 파열이 심하신 분들은 주사도 소용이 없고 시술까지 해도 며칠 괜찮다가 다시 아프셔서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분께도 수술을 권유드렸고 생각 좀 해보겠다 하시면서 퇴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주무셨다며 수술 원하신다고 말씀하셔서 내원 다음날 오후 바로 수술 진행했습 니다.

위에 사진 5장은 수술 전, 아래 5장은 수술 후입니다.

내시경 보면서 터져나온 디스크를 제거하는 모습. 반짝거리는 금색 물질은 지방, 디스크 위 혈관이 덮인 밝은 핑크색 막은 신경과 뇌척수액을 담겨있는 경막입니다. 사진 상방이 medial, 좌방이 cranial. 30도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

(환자분 동의 받았습니다)

내시경으로 보면서 수술 깔끔하게 진행되었고, 디스크는 거의 다 제거되었습니다.

디스크가 up migrated 되어있어서 뼈를 많이 갈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hemilaminectomy 가능성) 지난번처럼 30도 내시경 덕분에 손상부위 거의 없이 안전하게 수술 진행됐습니다.

MRI 좌측 axial 영상 보시면 facet이 거의 온전히 보전된걸 볼 수 있습니다.

수술 전 항상 합병증 설명하면서 ‘불안정성’에 대해 말씀드리는데 이 정도로 손상을 줄이면 합병증 가능성이 굉장히 줄어 듭니다.

수술 전에는 걷지도 잠들지도 못할 정도의 좌하지 방사통을 호소하셨는데, 수술 후에 통증 거의 다 좋아지셨습니다. 잠도 잘 주무시고, 걷기도 잘 걸으십니다. 약간 저린 느낌, 가끔 찌릿한 느낌이 남아계신 상태셔서 통증 주사 한두차례 더 진행 할 예정입니다.

출혈량도 많지 않으셔서 입원 2일만에 퇴원하셨습니다. 불안정성 등 가능성이 낮아 합병증 발생은 거의 없을걸로 생각되 고요. 다만 디스크가 재파열되는 경우는 수술여부와 관련 없이 5~10%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관리 잘 하셔야한다고 설 명드렸습니다. 이번엔 내시경 사진도 찍었는데, 개인 SNS에 올려도 괜찮을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흔쾌히 동의해주셨습니 다.

서전이 서전 나름대로 고충이 있긴 하지만 수술하고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케이스가 많아서 보람도 많은것 같습니다.

‘전문의 수련규정 개정’ 입법예고. 전례없는 정부의 후퇴.

– 전공의들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재입법’을 예고했고, 19일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한 의견 수렴을 마쳤습니다.

해당 개정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전공의 수련에 관한 특례

보건복지부장관은 보건의료 심각 단계의 위기경보가 발령되거나 이에 준하는 상황으로서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공의의 수련기간·수련연도 및 추가 수련에 관한 기준을 별도로 정할 수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문의 수련규정(대통령령)을 수정해서 9월턴으로 복귀가 불가능해진 전공의들에게 10월턴, 11월턴으로도 복귀할 수 있게 규정을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7월10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 정부가 대통령령과 보건복지부령을 수정하지 않으면 9월까지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은 2024년3월부터 25년 2월까지의 수련기간을 포기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규정(때통령령)에 따르면, 트레이닝은 3월이나 9월에만 시작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정부가 대통령령과 보건복지부령을 수정하는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령 개정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신 9월부터는 정부 측에서 꺼낼 카드가 더는 없다고 말했었죠. 그래서인지 정부 측에서 결국 대통령령 개정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들었습니다. 유례가 없는 카드입니다. 2000년, 2020년 의료파업 때도 전공의들을 복귀시키기 위해 대통령령까지 개정한 전례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정부가 이렇게까지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려고 안간힘을 쓸줄은 몰랐습니다. 전문의 배출 공백이 그만큼 정부 측에 치명적이라서일까요?

의협 측에서는 개정안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수련시스템과 전문의양성 시스템 붕괴를 막고자 무리한 편법을 쓰는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공감하며 해당 대통령령 개정안에 마냥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 측에서 대통령령 개정이라는 카드까지 뽑았다는 것이 정부가 그만큼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이전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 9월부터는 전공의 선생님들도 희생을 각오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9월이 넘어가서 복귀하려면 대통령령까지 개정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료대란때 대통령령까지 개정하며 대응한 전례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위해 유례없는 대통령령 개정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사직으로 정부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같이 움직일 때 상황은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전에 말한적이 있습니다.

이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에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관련자료

-법제처 입법예고 공고번호 제2024-601호

-법제처 입법과정안내 대통령령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33000호)

개인적으로 홍대 옆에 있는 합정에 자주간다. 지금 살고있는 당산과 가깝고, 당산이나 직장인들이 많은 여의도와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는 여자친구와 합정동에 있는 오레노라멘 본점에 갔다.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이다. 라멘 한 그릇 가격이 1만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 반면에 유명 맛집에 왔다는 만족감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합정 오레노라멘 본점. 주말에 가면 사람들이 1층까지 서서 기다리고 있다. (출처: 익스트림무비 홈페이지 게시글)

주문 자판기에 영어가 실려있지 않아 쩔쩔매는 외국인 커플을 도와주고, 15분쯤 대기했을까.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 7시인데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반주를 좋아한다. 밥 먹을때 술 한잔씩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식사에 곁들이는 맥주나 와인 한 잔은 나도 기꺼이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 날은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간만에 차를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은 여자친구 혼자 마시기로 하고, 라멘 두 그릇과 더불어 맥주를 한 잔 시켰다.

라멘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맥주는 금방 나오겠지. 금방 나올 맥주를 기다리며 여자친구에게 물었다. 한 잔 나오는 맥주 잔을 종업원은, 나한테 줄까 아니면 여친한테 줄까?

남녀 둘 중 한명만 술을 마신다면 아무래도 그건 남자일 가능성이 높겠다.

맥주는 여자친구만 마실테지만, 보통 커플이 맥주 한잔만 시키면 남자 쪽이 마신다. 그러니까 종업원은 남자인 내 자리에 맥주가 담긴 맥주잔을 놓으렸다.

여자친구는 ‘글쎄’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한테 줄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누구한테 줄지 물어보고 줄까 아니면 그냥 내 자리에 올려놓고 갈까?’

두번째 질문에도 여자친구는 지켜봐야 할거같다고 대답했고, 나는 ‘안 물어보고 나한테 주고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예상대로 종업원은 맥주를 가지고 왔다. 주문하고 5분이 지나지 않아서다. 맥주잔을 어디에 둘지는 묻지 않았고, 예상대로 내 자리에 두고 갔다. 모두 예상대로였다.

‘뭐 한그릇에 만원 하는 식당이니까.’

내심, 물어보고 여자친구에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저렴한 식당에서 이런 서비스를 기대하는건 욕심이렷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여긴 저렴한 가게니까 잔을 안 묻고 내려놓는게 문제는 없는데, 만약 1인당 10만원 하는 비싼 식당이었으면 맥주를 누구에게 줄지 물어보고 주지 않았을까?’ 여자친구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그랬을거 같다고 대답했다.

이런 고오급 식당에서 물어보지도 않고 맥주잔 대충 나한테 주고가면 좀 황당할거 같다

생각해보면 소득 수준이 이런 서비스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때 식당가면 별 생각 없이 주문하고 그랬던것 같은데.

10년 전 쯤, 그러니까 2015년 공중보건의사 시절에 중국 사천지방의 한 식당에 갔을때가 떠올랐다. 모든 식당이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 식당은 사람이 참 많았다. 그에 비해 종업원 수는 부족하고 또 시끄러워서, 종업원을 부르려면 服務員(Fuwuyan, 후우옌)이라고 소리를 질러야했다. 그 곳에선 메뉴 외에 고를 수 있는게 없었다. 워낙에 정신이 없으니까 물어보는것도 메뉴 뿐이었지.

우리나라에선, 내가 어릴때는 음식점에 알러지를 묻거나 디테일하게 뭔가를 고르는걸 할 수가 없었다. 알러지 있으면 그저 독특한 사람 취급하고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달까. 비건식당 같은건 그냥 흥미로운 대화주제 수준이었던거 같고.

2000년 즈음인가, 신문 사설에서 ‘이제는 알러지 호소도 유난떤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땅콩 알러지 있냐고 묻는다거나, 비건 식당이 길거리에 툭툭 튀어나오는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얘기였는데, 어느날 보니까 우리나라도 그러고 있더라. 1인당 GDP가 1만달러 하던 내 유년기의 한국과 3만달러가 넘은 2020년대의 한국은 많은게 달라졌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수준이 늘어나면서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20년 전에는 그저 농담의 소재였는데 요새는 사회에서 좀 더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LGBT 관용도 통계지도. 전반적으로 소득수준과 관련이 높아보인다.

젠더이슈가 한창 불붙었던 2016~2022년과 비교해서 요즘은 다소 소강된 양상이다. 그럼에도 최근 르노코리아 ‘손가락 논란’을 보자면 언제든 다시 불붙을 가능성은 있어보인다.

작년의 ‘넥슨 메갈 손가락’ 사태에 이어 올해는 ‘르노 사태’가 터졌다.

젠더이슈와 성소수자, 다양성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통 전자에는 관심이 크고 후자에는 관심이 적어지게 되는데,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철학적인 근거가 일치하기 때문에 젠더이슈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해보고자 하다보면 성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해서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언급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남성 관점에서 젠더이슈를 언급하는 분들을 보면, LGBT라던가 하는 것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에서 영감받은 프랑스철학을 근간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더 포용적인 분위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젠더이슈 논쟁에 뛰어들면서 LGBT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로(좌익진영에서 주로 인용되는 정치이론이라는 이유도 있겠다) 포스트모던, 프랑스철학을 배격하면 10년, 20년 뒤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39

저도 가끔은 본업 얘기를 올려야할거 같아서 ..

전문의 따고 이제 3년차인데 페북에는 전공의 시절 Brain 얘기만 써왔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뇌와 달리 척추는 신경외과만의 영역이 아니죠. 또 수술이 아닌 시술 통증 영역까지 눈을 돌리면 다양한 과에 저보다 많이 아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요. 척추는 글 쓰기 참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 수술 잘됐다 싶은 영상 있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Lateral recess stenosis,

척추는 잘 모르던 시절에 영상만 보면 이게 뭐가 잘못된거지 싶던 질환인데요. (척추 협착으로 좁은 부위에 디스크가 같이 와서 많이 터진것도 아닌데 신경이 꽉 눌려서 많이 아프다 요런 느낌입니다. 디스크 없이 협착만으로 아픈 경우도 굉장히 많고요. 첨부사진 참고하시면 됩니다)

증상과 영상 소견이 심하지는 않아보여서 척추신경성형술 했는데 얼마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지셨고, f/u MRI상 재파열인듯해 UBE양방향내시경으로 후궁감압술 수술 시행했습니다. 수술 하고나서 하지 방사통은 완전히 사라지셨고 3일만에 퇴원하셨습니다.

다른 Spine surgeon 선배님들과 마찬가지로, Facet(후관절) 손상 최대한 안 주려고 신경써서 했는데, 30도 내시경으로 해서 그런지 거의 보존했고 post op MRI 영상에도 아주 잘 보입니다.(위 4장이 pre, 아래 4장이 post) Facet 손상 안 주려고 Contralateral approach로 해볼까 고민도 했었는데 ipsilateral approach로도 거의 보존되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내시경이 여러모로 참 좋긴 한데 아직 Dissection 할때 시간이 좀 걸리긴 하네요. 이제 병원에서 일 시작한지 반년 조금 넘었습니다. 대표원장님들께서 같이 재미있게 일해보자고 하셔서 심쿵하고 들어왔는데 대표원장님들 너무 좋으시고 병원 분위기도 좋아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도연

공무상 기밀 누설? 떳떳하지 않으니까 평범한 정보도 기밀로 보이는겁니다.

‘공보의 명단’ 으로 압수수색 당한 사건이 7월15일 어제 검찰 송치되었습니다. ‘공무상 기밀 누설’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입니다. 그리고 저는 송치된 전공의 2명, 공보의 6명 등 의사 11명과 의대생 2명 중 1명입니다. 그리고 오늘, 송치 결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지난 4월, 병원에서 퇴근 직후 문 앞에서 압수수색을 당했었습니다. 대학병원 파견 ‘공보의 명단’ 때문입니다. 전공의 사직사태로 지난 3월경, 정부는 공보의들을 서울의 빅5등 대학병원에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그 명단이 의사들 사이에 돌았습니다. 저는 ‘공보의 명단’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정부는 이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해당 ‘공보의 명단’에서 파견 공보의들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고 근무지, 전공과목, 파견병원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 의료 유지를 위해 지방의료를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공보의 명단’ 사진 공유에 대해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 누설’이라며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포함한 다수의 의사/의대생들이 압수수색으로 핸드폰을 뺏기는 등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제10장 벌칙에서,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위법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공보의 명단’은 최초에 파견 예정자들끼리 원활한 업무를 목적으로 공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저같은 외부 의사들에 의해 ‘지방의료 공백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 비판을 목적으로 공유되었습니다. 이 중 어디에서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이 있습니까? 정부가 떳떳하지 않으니까 ‘비밀 누설’이니 ‘개인정보 보호법’이니 들먹이면서 입을 막으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문재인 정부가 ‘9시 영업 제한을 어긴 자영업 매장을 압수수색’한 사실에 대해 ‘보통 사람들에게 경찰의 압수수색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무섭기까지 한 일’이라며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국민을 겁박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보의 명단’ 사건은 심지어 위법성마저 없는 사건입니다. 해당 사진은 부정한 수단으로 취득되지 않았으며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가 떳떳하지 않으니까 합법행위를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국민을 겁박’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합법 행위에 대한 압수수색은 후보자시절 자유를 외치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반대되는 명백한 반자유적인 행보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증원 2000명을 고집하는 바람에 전공의 사직사태가 5개월째 장기화되고, 해결하겠다던 지방의료 붕괴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독선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정책 추진으로 발생하는 의료붕괴의 책임은 모두 윤석열 정부에 있습니다.

제가 했던 ‘공보의 명단’ 공유는 자유롭고 정당합니다. 누가봐도 합법적이었던 ‘공보의 명단’ 사건의 송치 결정은 자유롭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위한 서울경찰청의 부역 행위입니다. 만일 검찰마저 기소결정을 내린다면, 반자유주의적인 윤석열 정부의 겁박 행위에 대해 당당히 맞서겠습니다.

* 문자 메세지는 제 핸드폰으로 오늘 받은 것을 캡쳐한 것입니다.

* 명단 사진은 제가 압수수색당했던 사진과 동일한 파일입니다. 제가 최초로 받을 때도 본명이 삭제된 상태로 전달받았습니다.

* 오늘 호우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비가 많이 옵니다. TMI지만, 이 와중에 척추융합술 하고 퇴원하신 환자분께서 비를 뚫고 내원해주시고 또 수술 후 너무 좋아졌다 하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도 별일 없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7월15일까지 전공의 사직여부 결정, 향후 예측

– 9월부터는 전공의들도 희생을 각오해야할 시점

– 복귀하지 않을거라면 다수와 함께해야

– 정부는 9월 이후 plan B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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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전, 정부에서 전공의 사직 사태에 대한 브리핑을 했습니다.

전공의들 피해를 최소화하겠으니 제발 돌아와달라는 뉘앙스의 브리핑이었습니다. 처음에 말한 ‘기계적 법집행’은 하지 않을 것이고 ‘수련특례’를 줄테니 돌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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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분석의 필요성>

정부가 발표한 ‘수련 특례 사항’에 대해서 어제 분석을 마쳤습니다. 수련 특례 사항을 간단하게 말하면, 현재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직 전공의가 최대한 제때 전문의 수련을 마치게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해당 방침을 ‘갈라치기’로 인식하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복귀전공의, 사직 후 9월턴으로 재임용되는 전공의, 최종 사직하는 전공의 3가지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갈라치기’ 목적도 없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예외상황을 인정해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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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의료파업과 2024사직사태의 차이>

2000년도 의료파업때에는 파업한 전공의 선생님들이 문제없이 복귀했고 수련기간도 인정, 파업 전 예정된 일자에 전문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에도 문제가 해결되면 차질없이 전문의가 될 수 있을것이란 예상을 많이들 하십니다. 하지만 2000년은 사직을 안 했고 2024는 사직의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큽니다. 사직의 형태로 진행된 이상, 2000년도 그대로 2024도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 일정대로 전문의가 될 수 있느냐, 추가수련 등으로 지연되느냐와 관련된 법령은 2개가 있습니다. ‘대통령령’과 ‘보건복지부령’입니다. 정부에서 ‘수련 특례’로 발표한 내용은 모두 이보다 하위 내용으로, 복지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내용입니다. 법령에 해당 안 되는 내용은 복지부가 자의로 바꿀 수 있는 반면, 법령에 해당되는 내용은 바뀌기 어렵습니다. 법령에 대한 분석이 미래 예측에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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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1. 사직 처리 안 되는 경우>

일단 사직을 한 전공의 선생님들의 경우, 대통령령(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사직후 재임용 될 수 있는 시점이 9월 뿐입니다. 9월턴 대신 10월턴 11월턴 이런식으로는 임용되는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사직이 처리되지 않고 애매한 상황에 있는 전공의 선생님들의 경우, 8월 중순까지 현사태가 종료되고 복귀할 시 문제 없이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추가수련은 받아야 하겠지만요.

보건복지부령(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에 따라 추가수련이 3개월이 넘어가면 전문의시험을 다음해에 치러야합니다. 추가수련 3개월 넘어가면 전문의자격증 취득이 1년 지연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직(3월1일부터) 기간이 4개월이 넘어가도, 일수 계산에는 주말과 휴일을 빼는 등 추가수련을 줄이는 여러 방법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적용한 전례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요약하면, 9월 전 사직을 하지 않고 복귀할 경우에는 원래 일정대로 전문의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다만 추가수련을 피하기는 어렵고, 구상권 청구 등 법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공의들이 피해를 받지 않는 최적의 상황은 전공의 선생님들이 사직처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8월 초중순까지 현 사태가 마무리되어 전공의 선생님들이 복귀하는 상황입니다.

(참고 : 사직 없이 9월 이후 복귀시에는 보건복지부령이 수정되어야만 제때 전문의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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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2. 사직처리 후 9월턴 재임용>

하지만 항상 상황이 뜻대로만은 되지 않죠. 전공의들 주류가 사직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이미 사직처리 해버린 전공의들과 이해관계가 갈리게 되기 때문에 내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2월29일자로 전체가 일괄 사직해야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은 크게보면 옳은 판단입니다. 결국 전공의 선생님들은 최종 사직 여부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직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순간에 2월29일자 사직으로 결정하는게 최선의 수입니다.

다만 2월29일자로 사직하게 될 경우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법령 테두리 안에서는 가을턴(9월턴) 형태로 재입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전문의 시험은 반년이 딜레이되며 (원래는 1년 딜레이인데 법령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전문의 빨리 만들어주는게 6개월 딜레이입니다), 사직 이후의 시간은 수련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됩니다.

이마저도 9월 전에 현 사태가 마무리되는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공의 선생님들이 얻은것이 없이 돌아갈 수는 없는 분위기인 상황이죠. 사직 상태로 9월이 넘어가는 상황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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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3. 사직처리 및 9월 이후 투쟁 지속>

현 법령 테두리 안에서는 9월 넘어가면 꼼짝없이 내년 3월에 재임용 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7/10 오늘 복지부가 9월복귀 안 하면 3월 재임용은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2월 당시 정부가 ‘기계적 법집행’을 천명하던 것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우 올해 3월 이후의 수련기간은 인정받을 수 없고요. 원래 전공 원래 병원으로 되돌아가게될 가능성은 높겠지만 예외적인 상황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 자리에 가을턴이 들어와서 밀려난다던가 하는 상황이요. (가을턴이 들어와도 TO를 새로 늘려서 내 자리를 더 만드는건 현 법령에서도 가능은 합니다만 명분이 없어 쉽지는 않을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공의 선생님들이 투쟁을 위해, 사직처리 마치고 9월을 넘길 경우 전문의를 1년 늦게 따게되는 상황은 각오를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의사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국민들이 모두 사직전공의들을 응원하고 있다면 대통령령까지 수정돼서 사직기간이 전부 수련기간으로 인정받고 제때 전문의도 되는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여론이 의사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제가 단일대오 유지해야 가장 안전하다 말씀드렸지만, 9월부터는 피를 봐야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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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월 이후에는 plan B가 없다>

그래도 현상황을 유리한쪽으로 해석해보자면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전공의 사직사태가 9월 이후로 넘어가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7월8일 정부 브리핑은 ‘일부라도 복귀시키겠다’는 목적으로 결정된 내용입니다. 전공의가 20% 가량이라도 복귀하면 단일대오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고, 어떻게든 최대한 복귀시켜서 도미노 의료붕괴를 막으려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발표 당시 기자의 질문에도 그렇듯, 9월까지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의 대책은 정부에 없어보입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단일대오 유지하면서 투쟁을 9월까지 이어갈 경우 정부에서는 대처할 방법이 준비되지 않아 패닉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생기고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다가 원치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투쟁을 이어나갈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상황은 이해를 해두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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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리한 경우의 수>

오늘 교육부에서 ‘I학점’이라는 개념까지 도입해가며 학생들을 진급시키려고 하던데, 이건 여론과 관계없이 정부가 의대생들에게 내놓은 패입니다. 투쟁이 9월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제일 곤란해지는 것은 정부라는 주장도 틀리지 않습니다.

또, 신규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을 경우 정부 어용단체인 ‘대한종합병원협의회’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신규전문의 공백으로 가장 곤란해지는 그룹이니깐요. 전공의 선생님들이 전문의가 되기 싫어도 정부가 전문의 만들어줘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 쓰고나서 드는 생각은, 전공의 사직처리가 정부에게는 엄청난 도박수라는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전공의들이 복귀도 안 하고 9월 재임용도 하지 않으면 정부는 뒷감당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제가 정부의 디시젼 메이커였으면 7/15까지 사직여부 결정하라는 지시를 무를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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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듣기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각오가 되어있으시다던데, 각오가 아직 안 되신 선생님들도 계실겁니다.

말씀드린대로 9월 이후까지 투쟁이 이어지면 2020 국시거부 때처럼 누군가는 피해를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연히 2000년 때처럼 아무일 없이 복귀할거라고 생각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변수가 생겨서 아무일 없이 복귀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소극적인 분들을 설득할 때 리스크에 대한 설명도 하고 설득하시는걸 권유드립니다. 2020에도 상당수 본4 학생들이 리스크에 대한 이해 없이 동참했다가 나중에 내분이나서 많이 힘들어하셨거든요. 내분으로 가장 힘들어하던 분들이 앞장서서 국시거부를 이끌던 분들이었습니다. 올해는 같은 고생을 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https://www.medipana.com/health/view.php?news_idx=292161 [기고] 파업백서 제작 앞서 대전협이 되짚어야 하는 것 [기고] 파업백서 제작 앞서 대전협이 되짚어야 하는 것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총회에서 대전협은 2020년 의료파업, 전공의 단체행동 백서 제작을 의결했다. 당시 석연치 않은 파업 종료과정 때문에 논란이 많았고 이로 발생한 전공의간의 법적 공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전협이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 정… www.medipana.com 이대목동병원 박지용 전공의(대한전공의협의회 대의원)

(2022.02.04.)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총회에서 대전협은 2020년 의료파업, 전공의 단체행동 백서 제작을 의결했다.

당시 석연치 않은 파업 종료과정 때문에 논란이 많았고 이로 발생한 전공의간의 법적 공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 기에 대전협이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 정리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지난2020년 여름 의료파업 2020년 여름 의료파업은 의료사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큰 획을 그은 커다란 사건이다. 그 중요도에 이 어서 지난 파업이 20년만에 열린 대규모 의료파업이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상대는 21대 국회 180석을 앞세워 임대차 3법, 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들을 무소불위로 통과시킨 거대여당이었다.

하지만 전공의를 필두로 한 의사집단은 이를 결국 막아세웠다. 21대 국회 거대여당의 독단입법을 막은 것은 의사들이 처 21대 국회 거대여당의 독단입법을 막은 것은 의사들이 처 음이었다.

음이었다. 심지어 전문직들이 다른 방법도 아닌 단체행동을 통해 여당을 막은 것이기도 했다. 국민들은 크게 놀랐고, 의사 의사 들의 투쟁에 감탄한 국민도 많았다.

들의 투쟁에 감탄한 국민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료파업의 종결 과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료파업의 종결 과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파업의 선봉에 섰던 대전협회장은 합의문에 서명한 의협회장을 강력히 비난했다. 9.4 합의 다음날 열린 대전협 회의에는 난입한 수십명의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대전 협을 비판했다. 대전협 비대위는 9월7일 파업종료를 선언하며 총사퇴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새로운 비대위 가 출범했고, 경선이 된 대전협 선거에서 파업을 이끌었던 대전협 부회장은 낙선했다.

파업이 끝나고 의료계에는 엄청난 혼란이 있었다. 회무경험이 전혀 없던 전공의가 사상 최초로, 그것도 인턴 신분으로 당 선되었다. 본과 4학년 의대생들의 국시거부 문제는 4개월간 전 국가적인 이슈였다. 대전협 박지현 전회장이 자신을 비판 한 전공의 회원과 의대생 수백명을 무더기로 고소한 것은 현재진행형이기 까지 하다.

끝나지 않은 혼란 속에서 2021년 8월, 25기 대전협 회장선거가 치러졌다. 25기 대전협 회장이 된 여선생은 최근 대전협 정기총회에서 파업백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파업 당시 있었던 오해를 풀고,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파업백서의 필요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껴왔다.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이 이미 파업백서를 발간하였으며, 나 도 당시 기사와 기록들을 이용해 파업의 진행과정에 대해 페이스북에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경찰서에 연락받은 작년 9월 초에 시작해 마무리가 지난 28일 되었으니 기록에 거의 5개월 가까이 걸렸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지난 파업에서 난 파업에서 반성할 것과 배울점 반성할 것과 배울점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도 글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 파업에 대해서 반성해야할 문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마무리 과정에 발생한 대혼란이다. 지난 파업이 대혼란으로 끝 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이유는 딱 하나다. 합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노조가 없었기 때 문이다. 당시 대전협에도 여한솔 선생이 초대 위원장이었던 전공의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기능을 할 수 없는 유령노 당시 대전협에도 여한솔 선생이 초대 위원장이었던 전공의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기능을 할 수 없는 유령노 조였다. 따라서 2020 의료파업 당시 대전협에게는 단결권, 단체행동권, 교섭권이 없었다. 단체행동권이 없는 전공의들의 조였다. 따라서 2020 의료파업 당시 대전협에게는 단결권, 단체행동권, 교섭권이 없었다. 단체행동권이 없는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이 말이 되는가. 전공의 단체행동이 사실은 지도부가 징역을 각오해야하는 불법파업이었다는 뜻이다.

단체행동이 말이 되는가. 전공의 단체행동이 사실은 지도부가 징역을 각오해야하는 불법파업이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대전협은 파업을 위해 조직된 단체가 아니었다. 그런 대전협 집행부에게 예고도 없이 파업을 위해 징역갈 각오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했다. 반면, 파업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전공의들은 너무나도 강경했다. 징역을 각오한 전공의도 많 았다. 업무개시명령으로 고소당한 전공의들마저 파업을 지속해달라 할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돼있었다. 그 어떤 예고도 없 었던 징역각오를 강요당한 지도부, 그리고 징역을 각오하고 파업 지속을 외치는 회원들. 출구전략이 없어 브레이크가 고장 난채로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8톤트럭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수의 대전협 집행부는 회장단에게 이런 상황을 전공의들에게 설명한 뒤 파업을 끝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전협 회장단은 이를 묵살했다. 그러고는 전공의들 앞에서 파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전공의들에게 거 짓말을 한 것이다. 앞에서는 파업이 잘 되고 있다 해놓고 뒤에서는 파업을 끝내려하는 대전협을 목격한 전공의들 사이에는 음모론이 돌았다. 대전협은 대깨문이다, 정부에게 무언가를 받았다, 파업후원금을 횡령하려 한다 등.

내리막길을 질주하던 8톤트럭은 결국 9월 4일 가드레일을 받고 질주를 멈췄다. 9월4일 최대집 전 의협회장이 갑작스럽게 합의문에 서명한 것이다. 질주는 끝났지만 엔진은 아직 돌고 있던 전공의들. 그 엔진은 9월7일 대전협의 ‘로드맵 1단계’, 즉 1인시위를 제외한 모든것을 중단한다는 발표를 통해 멈춘다. 이날 기존 비대위가 총 사퇴한뒤 출범한 신비대위의 9월 8일 임시총회에서 결정된 의결로 파업을 지속하던 일부 병원들도 전부 파업을 종료, 엔진은 최종적으로 멈추게 된다.

파업기간동안 인스타라이브 방송을 통해 전공의들과의 투명한 정보 공유와 적극적인 소통을 여러차례 강조했던 대전협 지 도부였다. 대전협은 여러 채널을 통해 전공의들에게 대전협을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부탁과는 반대 로 오프라인 현장의 밀실회의에서는 대의원들에게 평전공의들의 의견반영은 필요 없으니 파업을 끝내는데 투표하라고 종 용했다. 덕분에 전공의들 사이에 돌던 음모론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대혼란의 원인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노조의 부재로 인한 출구전략의 부재, 소통을 강조하던 회장단의 허위사실 유 포. 결국 근본적인 해답은 합법적인 파업을 가능케하는 병원별 노조다.

결국 근본적인 해답은 합법적인 파업을 가능케하는 병원별 노조다.

필자는 정권 연장의 가능성이 가장 높던 올해 1월 초, 대전협이 병원별전공의노조를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건의했다. 파 업이 필요할 수 있으니 합법파업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회장은 내가 대표로 있는 이대목동병원부터 만들라고 했 다. 두 달 뒤 전문의가 되어 전공의 대표 직위를 잃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하기에 적절한 말인가. 지난 파업 당시 대혼란의 원 인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그 뒤 병원별 노조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발언하는 것을 보니 파업 당시처럼 집행부 다수의 구성원들은 합리적인 것 으로 생각된다. 원래 1월10일로 예정되었던 백서제작위원 선발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파업백서 제작의 그 중요도만큼 진 행도 신중하게 하기 위해서 지연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불행했던 과거를 대전협이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기고| 이대목동병원 박지용 전공의

의협이 대표성을 못 얻고 있는 이유는 2020 전공의 단체행동에서 배운게 없어서다.

– 박지현 대전협 회장이 최대집 의협회장의 합의에 따랐던 이유

– 올특위 위원 구성이 잘못된 이유

요즘 의협이 하는 일이 없다는 공격을 슬슬 받고 있죠. 전공의협회와 의대생협회에서 공개적으로 의협을 비판했고, 기자들은 의협이 협상력을 잃었다고 기사를 써내리고 있습니다.

현 상황의 원인과 해석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이 조금씩 모두가 다릅니다. 정답이라는게 있기 쉽지도 않습니다. 회장이 경솔해서라던가, 산하단체장이 무례했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래서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제 생각을 해봤습니다.

올특위는 어떻게 해야 현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가?

뜬금없지만 어제 생각한 이유를 조금 말해보겠습니다. 오늘 있다는 올특위 회의에 참관신청을 받더군요. 봉직의는 참관 불가능하단 말이 없어서 올특위 참관 신청했는데 거부당했습니다. 전공의와 의대생만 가능하다는데, 전화 받아서 정중히 사과받긴 했고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가벼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올특위가 왜 펑션이 안 되는지.

2020년 의협과 현 의협, 집행부는 대부분 겹치는데 왜 지금은 그 때 처럼 지지부진할까요? 왜 올특위는 기능을 못 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20년에서 배운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2020년에는 파업이 순식간에 끝나버렸죠. 일부 소수의 전공의들이 그대로 사직해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환자 진료만 놓고 보면 큰 혼란 없이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최대집 의협회장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박지현 대전협회장이 로드맵1단계로 격하하고, 전공의들이 우르르 복귀했었죠. 2020년에는요.

제가 2020 겨울에 새로운 대전협 집행부에 합류했을때, 당시 의협 집행부 선생님들과 만나서 고기도 먹으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최대집 – 박지현 명예훼손 소송문제로 또 여럿 있었고요.

당시 의협 집행부와 소통하며 느낀 것은 하나였습니다. 이 분들은 의협이 왜 전공의들에게 욕 먹었는지 아직까지도 이해를 제대로 못 하고 있구나. (드디어 이해했구나 싶었던건 2023년이었습니다)

의협 집행부가, 의협이 왜 욕먹었는지는 이제 이해를 하는 것 같은데, 최대집 전회장의 합의문 서명으로 모든게 끝났던 메커니즘은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거 같습니다. 그냥 회장이 합의해서 다 끝난거 아니야? 수준입니다. 그거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1. 대전협 회장이 의협 회장을 따르는건 당연한게 아니다.

5월에 의협에서 ‘대전협은 의협의 산하단체이니 상위단체장의 지시를 따라야한다’는 발언이 있었죠. 이 발언에서 2020년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한 이해가 의협에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월4일 합의 전날 있었던 회의에서, 합의안을 만들어놓고 박지현 대전협 전회장이 했던 말은 이겁니다. ‘이 합의안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대전협은 파업(단체행동) 계속 합니다’.

이건 공중파에 공개된 최대집 전회장 목소리로도 나오죠. ‘대전협은 하겠다던거(파업 지속) 하면 되잖아?’

하나라도 빼면 파업 계속한다는 대전협 측의 경고에도, 최전회장은 합의문에서 하나 빼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박지현 전회장은 전날 엄포랑 다르게 들어가고야 말죠. 박지현이 산하단체장이어서 의협 회장말을 들을 수 밖에 없어서였을까요?

산하단체장이라 그런거면 애초에 녹취록을 언론에 뿌리지도 않았겠죠. 박 전회장이 파업 끝냈던 이유는 감옥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불법파업이었던 전공의 단체행동을 지속하면 누군가는 감옥에 가야하는데, 그 전까지 감옥은 내가 가겠다며 나만 따르다던 최대집 회장이 합의하고 들어가면, 파업 지속시 감옥갈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박지현 대전협회장 본인입니다. 최대집이 파업을 끝낼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 말고는 감옥 가겠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옥 선언’이 중요한 이유는 파업 후 대전협 측 주장에 최대집 전회장과 징역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어떻습니까? 의협 회장은 ‘내가 대표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발언을 한적이 있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 이번 전공의 대표들은 감옥에 갈 생각이 없나요?

2. 대전협의 결정에 전공의들이 따르는 것도 당연한게 아니다.

올해 2월6일 이필수 전 의협회장이 파업 관련해서 했던 발언이 있습니다. ‘정부가 의대증원 강행하면 책임지고(?) 집행부 총사퇴하겠다’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필수 전회장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데 저는 이필수 집행부가 투쟁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투쟁위원회에 최대집 전회장 초빙하는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파업은 이필수 집행부 역량 밖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요.

아무래도 현 집행부 다수가 2020 파업 당시 최대집 집행부와 겹치기 때문에 당시 족보 같은거는 그대로 다 남아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의협에 의협 족보는 있는데 대전협 족보가 없다는겁니다.

최대집이 합의한다고 박지현이 수긍하는게 당연한게 아니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박지현이 수긍하면 전공의들이 복귀하는게 당연한건가요? 이것도 당연한게 아닙니다.

대전협이 전공의들을 ‘그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각 병원의 전공의대표들, 즉 대전협 대의원들을 꽉 잡고 있어서였습니다. 방향설정은 대전협 집행부가 했지만, 최종 결정은 대전협 대의원들이 했습니다. 당시 빅5가 중요한 결정을 다 한다는 불평이 나왔는데, 정확히 말하면 ‘(빅5를 포함한 다수의)전공의 대의원들’이 다 결정한겁니다.

대전협의 전공의 지휘력의 힘은 각 병원 전공의대표(대전협 대의원)들의 협조에서 나왔습니다.

– 파업종료 후 발생한 혼란 수습의 지분도 80% 이상이 각 병원 전공의 대표들에 있었습니다. ‘꼬우면 니가 대표하던가’로 수습이 끝난 병원이 대부분이었고요. 꼬아서 나온 새대표가 나온 병원들도 결국에는 새로 나온 대표들이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 대전협 (구)비대위에 반발해서 나온 신비대위 공동대표도 전원이 각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의협에서 당시 파업을 진행하면서, 중요한 회의를 범투위에서 했으니 올특위 구조도 범투위를 따라갔는데요. 범투위가 중요하다는건 선배 의사들의 생각이고 실제로 전공의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의는 대전협의 대의원회의였습니다. 위원 구성을 (전공의 눈에)중요하지도 않은 범투위 따라해놓고 전공의들이 안 들어온다고 비판하는거는 그냥 의협의 오판입니다. 2020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2020년 전공의들은 범투위 결정을 따른게 아닙니다. 2020 대전협 비대위의 ‘의결’을 따른겁니다. 각 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따른거란 뜻입니다. 그리고 대전협 대의원회의(대전협 회칙에 근거해 병원 대표들 모아서 그들에게 부여된 의결권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된 회의)가 전공의들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올특위 구성해놓고 전공의 들어와 들어와 하는데 들어가도 전공의들은 올특위 안 따릅니다. 2020년에도 전공의들은 범투위를 따른게 아니었다니깐요.

결론

지금 의협에서 사직전공의 선생님들 초대해서 의견 듣고 있는거로 압니다. 그거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고요.

답답한 것은 의협이 2020년에 대해서 이해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면서 2020년 당시 전공의 파업을 주도했던 당시 레지던트 3, 4년차들의 의견을 받을 생각은 왜 하지 않고 있냐는 것입니다.

의협이 그 사람들을 싫어해서일까요? 진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뭐 저는 배제되고 있는거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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