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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의료단체 정치판을 보면서 느끼는 점.

( 먼저, 회장 탄핵이나 선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요 며칠 조용하더니 오늘 또 난리네요. 워낙에 많은 이슈가 뜨고, 제가 운영하는 단톡방에서도 많은 이견이 오고가는 하루입니다.

그저께 의학회, KAMC 여야의정 협의체부터 제 주변 사람들끼리도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게 수면위로 드러나다보니, 어떤 사람이 대표가 되는가부터 어떤 의견이 반영되는지 4년간 느낀점을 간략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전까진 의료단체 활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2020 단체행동 종료 때부터 의료단체 관련 활동을 시작하고 유명한 선배님들, 선생님들을 처음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들의 의도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디까지 성공하고 어디까지 실패하는지도 지켜봤습니다. 그 뒤로 느낀것은요.

1. (의료) 정치판에 남는 것은 결국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비난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2. 무능한 사람을 끌어내리면 전임자보다 유능한 사람이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의견에 더욱 무덤덤한 사람이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교수같이 점잖은 사람들이 모였을때 그렇다.

3. 사람들은 누구나 회장(디시젼메이커)의 참모가 되고 싶어한다. 참모가 되면 욕은 안 먹고 디시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참모가 되어도 회장은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4. 사람들은 옳은 소리에 귀를 귀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귀기울이는 것은 자극적이고 적당히 멍청한 발언이다.

5. 얼마나 적당히 멍청하게 말할지는 예술의 영역이다.

6. 공부를 잘 한 집단이라고 꼭 더 똑똑한건 아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150년 전의 프랑스 의사가 한 말이다)

7. 많이 공부하고 글을 쓸수록, 사람들은 당신의 글을 읽지 않는다. 글을 읽히는게 중요하다면, 차라리 귀여운 고양이 사진 한장을 넣는게 낫다.

8. 초심자가 긴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글이 맞는 말이라면 사람들은 더욱 읽지 않는다.

9. 사람들은 누군가를 옹호하는 논리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난하는데는 귀를 기울인다.

10.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은 팩트를 잘 구분할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팩트를 잘 구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1. 그 와중에 팩트를 구분할줄 알고, 팩트에 목마른 사람들은 존재한다. 소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12. 팩트를 구분할줄 아는 사람들은 팩트만 알면 거기서 만족하고 끝난다. 그리고 더이상 의견을 내지 않는다. 의견을 내도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13.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것은 팩트를 분간할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14. 팩트를 분간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생명력이 짧다. 실명 걸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틀린 팩트 때문에 결국에는 욕을 먹기 때문이다.

15. 그 와중에 비난에 둔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치판에 남아있다.

16. 남들이 욕해도 자기주장 꿋꿋하게 하는 사람들은 사실 귀한 사람들이다. 의사 중에 이런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실수 한 번으로 욕먹고 멘탈 터져서 의료 정치판을 떠나버린다.

17. 기본적인 법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정치판에서 법은 서로를 찌르는 칼과 방패이기 때문이다.

18. 같은 이유로 정치권에는 법조인들이 많이 진출한다. 의사들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 한마디에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잘못한게 아닌데 사과하는 경우도 많다.

19. 당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려면 기자들과 잘 지내야한다. 이 때 갑은 당신이 아니다.

20.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틀렸다. 요즘 기자들은 펜 대신 키보드를 치기 때문이다.

21. 거짓이 대세일때 의사들은 진실을 말하기 두려워한다. 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관련된 책으로 군중심리(귀스타브 르 봉)와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을 추천드립니다.

의사들의 언론 플레이와 관련해서 아쉬운 점.

의사들의 언론 플레이와 관련해서 아쉬운 점.

2024의료대란 2024의료대란 글 2개를 이어붙입니다.

2024.10.15. 용산구에서 경기도의사회 집회때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글입니다.

10.15.

전공의 선생님이 오늘 용산에서 1인시위 하다가 폭력진압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언론을 통한 기사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메디컬지 통해서 기사화 하기 용이해보입니다. 메디컬지 가 안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진만 가지고 기사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여서, 당사자 전공의 선생님께 연락드릴 필요 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 선생님의 연락처가 없는 상황입니다.

커뮤니티에도 기사로 내보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고, 저도 거기에 동감합니다.

혹시 당사자 선생님의 연락처를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10.16.

의사들의 언론 플레이와 관련해서 아쉬운 점.

어제 있었던 용산의 경기도의사회 집회 중 발생한 과잉대응에 대해 기사화를 위해 당사자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습니다. 당사자께서 언론과 접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사화하려면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언론과 접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저도 예전엔 그랬지만, 의사나 의대생들이 언론 과의 접촉을 피하는 경향 때문에 기사화에는 번번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용산 경기도의사회 집회 중 발생한 과잉대응 사건을 언론에 다루는 데 있어서 기자 컨택의 중요성과 아쉬운 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실관계 측면입니다. 많은 분들이 ‘1인 시위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단체 시위였습니 다. (용산경찰서 측에 문의한 결과, 신고된 집회라고 확인되었습니다)

믿을만한 분들이 말해주신 내용이라도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증 절차를 거치는 커뮤니티에서도 기본적인 사실관 계가 틀리는 경우가 많이(정말 많이) 발생합니다.

커뮤니티 글만 보고 고소나 고발, 언론화를 진행했을 때 정의감에 불타서 행동한 사람들이 오히려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에, 당사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인터뷰를 하지 않아 기자가 기사를 쓰지 못한 부분입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번 사건의 언론화가 다소 미숙하게 이루어진 느낌이 있는데요. 기사화를 위해서는 기자가 양쪽의 의견을 모두 청취해야 합니다. 기자는 직업적으로 법적 리스크가 큰 직업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갖추어야 합니다.

기자가 고소고발 걱정 없이 기사를 쓰려면, 사건에 대한 기술이 기자의 주장이 아니라 당사자의 주장을 옮기는 형태여야 합니다. 당사자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채로 기사를 쓰게 될 경우, 기사는 당사자의 주장을 옮기는 아닌, ‘기자의 사실 적 시, 혹은 허위사실 적시’ 형태로 쓰여집니다. 없어도 되는 법적 리스크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사자가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법적 리스크를 기자가 혼자 전부 떠안아야 하기에 기사를 작성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1인 시위라고 말한 내용을 그대로 페이스북에 옮겼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을 보면 이런 리스크를 알 수 있죠.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실제로 일반 매체에서 기사가 쓰이지 않는 것은 정치적 이 유나 비합리적인 이유 때문인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메디컬지에서도 기사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이는 기자나 언론의 잘 못이 아니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기메디뉴스를 통해서만 언플을 한 부분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경기메디뉴스에서 작성된 기사를 보면 일 반적인 언론 기사라기보다는 유튜버가 사건을 다루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언론이라면 양쪽의 주장을 균형 있게 실어야 하지만, 경기메디뉴스 기사에서는 용산경찰서 측의 주장이 담기지 않았습니 다. 상대방(용산경찰서)의 반론을 담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이 의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한쪽 목소리만 담은 기사를 낼 경우 언중위 제소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포맷이 지켜지지 않은 기사를 보고 다 른 기자들이 사건을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경기도의사회에서 꾸준히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에 조직력과 노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회 같은 오프라인 활동은 열정있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쪽에 유리 하게 국면을 이끌 기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의미 있는 사건을 더 효과적으로 언론화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두고, ‘여자 김기덕이다’는 평이 많이 보인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고, 나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작품의 기괴함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될거 같다. 하지만 지향점을 놓고 보면 그 둘은 완벽하게 반대편에 서있다.

김기덕은 호불호도 강하고 국내외 평가도 서로 상반된 작가다. 외국엔 호평이 많은데 국내에서는 그닥?

나는 나름 다른 한국인들과 다르다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김기덕을 좋아하게 될줄 알았다. 하지만 나쁜남자, 해안선 두 작품을 보고 김기덕을 정말 싫어하게 됐다.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김기덕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자유가 짓밟히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이런 상황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멀쩡한 여자가 조폭한테 잘못 걸려서 창녀로 전락하는데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행복하게 느끼는 장면이 나오고 그게 또 평화롭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게 김기덕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기괴한 장면에서 나는 구역질만 나올 뿐인데, 어쨌든 현실반영은 탁월하다. 그리고 그런 장면에 서구권에서는 박수갈채를 날린다.

여자 성노예 만드는거 박수갈채보내는게 맞나? 근데 유럽 심사위원들은 지들 손에 똥묻히긴 싫으니 ‘동양적 감성’ 이러면서 지네들은 안 그런척 하는거지.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다.

반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기괴하고 불쾌한 묘사는 나올지언정 등장인물이 추구하는 방향은 바로 ‘자유’다.

주인공의 채식으로 가족들이 불행해지고 본인도 죽어가지만 본인의 채식에 대한 주장만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나는 서구인들이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데에서, 김기덕에게 주어지는 상을 보며 느끼는 구역감과 분노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강작가가 동양인이어서 안도하는 듯한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동양에 대한, 한국에 대한 타자화는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페미니즘과, 정치적 민주화나 특히 ‘에코’ 페미니즘으로 두드러지는 한강 작가를 선정한데에는, 서구인을 데려오기에는 어려운 ‘미지의’ 존재로서 한국을 소비한것 아닌가 싶은 부분이 있었다.

한강작가와 김기덕감독이 서구인이 아니어서 타자화를 통해 더 주목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음은, 공통분모 였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유가 역겨웠음과 순수했다는 차이와 비교하면 굉장히 작은 부분이지만)

다시 요약하면,
작품 보면서 불편한건 둘이 비슷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에 있어서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론가들한테 한강이 여자 김기덕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동의 안 할거라 확신한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47

Cult-like Reverence.
신격화는 단순히 신으로 떠받들어 추앙하는 것 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는 이들을 종교의 적으로 몰아붙여 때려잡는 교조주의적 태도를 포함한 의미다.
신격화를 직역하면 deification이 되지만, 신격화가 한국 사회에서 가진 의미를 가지면, Cult-like Reverence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얼마전 SNL에서 뉴진스 하니와 한강 작가를 패러디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하니 패러디에 대해서는 어눌한 발음을 따라해 인종차별로,
한강 작가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가늘게 떠서 외모비하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었다.

‘혐오표현’은 애매모호한 단어다.
세계적으로 혐오표현의 정확한 정의가 나라마다 제각각이며,
혐오표현을 다루는 기관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구분이 다르다.

다만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혐오 표현의 판단 기준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대항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비주류에 속하는 개인 또는 집단은 주류의 위협 속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되고 주류를 형성하는 혐오 표현의 지지자들은 집단적으로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결집하며, 결과적으로 혐오 표현은 사회 내 차별의 정당화, 조장, 강화로 귀결된다. ”

이런 관점에서 볼때 뉴진스 하니를 패러디한 SNL의 연출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뉴진스 하니를 패러디한 SNL의 연출. 매력적인 여성인 모니카 벨루치를 대하는 영화 ‘멜레나’의 한 장면을 오마주했다.

뉴진스 하니가 외국인으로서 말투가 어눌한 부분에 대해서 차별이나 배제나 고정관념을 부여한 부분이 있었나? 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우리나라 정치권력의 정점에 달한 국회의원들이 그녀의 팬으로서 경박한 행동 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이 장면에서 외국인에게 강요되는 이미지가 있었나? 없었다.

한강 작가의 경우 눈을 가늘게 떠서 외모비하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연출 과정에서 눈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외모 비하 의도가 관찰되지 않는다.
단순히 한강 작가의 외모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패러디로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작은 눈 같은 경우, 외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눈을 가늘게 떠서 인종차별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어 다소 민감할 수는 있겠으나 ..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눈을 가늘게 뜨는건 인종차별이라 보기 어렵다. 애초에 미국에서도 흑인 백인 아시아인들이 본인이 속한 인종을 비꼬는 농담도 널리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이 논란은 나처럼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거 같다.
논란이 커지지 않아 굳이 글 쓰지 말까 싶었는데 굳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신격화, Cult-like Reverence 를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일부에서 노벨문학상을 정치적인 상이라며 폄하하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직접 읽어봐도 예술적인 부분이나 ‘채식주의자’에서 에코페미니즘으로서 현대 사상을 다루는 내용이 탁월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한강 작가를 신격화하려 하고, 그녀의 이전 정치 발언에 대한 지적도 원천 차단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2017년에 한강 작가의 문제 발언 때문에 강경화 전장관이 비판하기도 했는데, 만약 그 사건이 2024년 올해 벌어졌으면 비판이 불가능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2017, 2018년에 벌어졌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이 아니면, 여성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발언도 용납되지 않는
페미니즘에 대한 신격화, Cult-like Reverence for Feminism 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비판과 다른 의견을 차단하는 태도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바로 2대남이었고,
그렇기에 최근 대선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친 것도 2대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요 몇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신격화는 보기 어렵지만,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신격화는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보기 힘든 동아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46

개인적으로 1000만 찍은 영화는 작품성이 어떻던 다른 사람이랑 소통하려면 꼭 봐야한다는 쪽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화제가 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방금 완독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조금 아는척 해볼 수 있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기괴하다는 ‘채식주의자’에는 확실히 기괴한 성애묘사가 나옵니다. 표현이 노골적인 것도 있겠지만, 상식을 벗어난 묘사들이 더욱 기괴한 느낌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사실 이런 기괴한 성애묘사는 선역과 악역의 경계를 흐리게하고 완급조절을 하기 위함입니다.

채식주의자를 ‘에코 페미니즘’ 소설로 보면 결국 진 주인공인 둘째딸은 남성 등장인물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역할로 보는게 맞는데요.

아버지도 그렇고 전남편도 그렇고 남성 등장인물들은 가해자이긴 하지만 일방적인 가해자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지만 둘째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모습으로, 전남편은 사랑없이 집안일 시키려고 결혼했지만 이혼에는 결국 채식을 계속하는 전부인의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요.

두 사람 외에도 주인공과 성관계를 맺는 형부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애가 묘사되는 두 사람은 한명은 정상인 한명은 정신질환자로, 원래는 정상인이 정신질환자를 착취하는 구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상인인 남성이 비정상적으로 성애에 집착하는 모습을 연출해서형부 또한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설명하는데요.

이로써 둘의 관계가 정상인-비정상인의 성적착취 구도가 아닌, 사실은(다소)비정상인-비정상인의 애매한 구도임을 설명해 완급조절을 해내는데 성공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러한 완급조절은 다른 유명한 페미니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과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해당 소설에서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편향되게 내용을 몰아갔었거든요.

그런데 채식주의자에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흐리게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을 하는 주인공이 정신병자로 묘사되고, 또 건강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이 비건을 조롱하기 위한 소설이라는 평도 있었다는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말도 안 되는 주장이죠.

성애에 대한 부분도 밑도끝도 없는 포르노 이런거는 아니고 나름대로 피해자-가해자 관계에서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 위한 나름대로 꼭 필요한 장치이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 유해도서가 되면 안 된다, 이런 얘기까진 아니지만요)

안본눈 삽니다 이런 얘기 많던데 솔직히 유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책 읽고 쓸 얘기는 확실히 많아지는거 같아서 읽기는 잘 읽은거 같네요.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책이었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qkrjiyong/45

한강 작가가 여자 김기덕이다?

작품의 기괴함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될거 같다. 하지만 지향점을 놓고 보면 완벽하게 반대편에 서있다.

김기덕은 호불호도 강하고 국내외 평가도 서로 상반된 작가다. 외국엔 호평이 많은데 국내에서는 그닥?

나는 나름 다른 조선인들과 다르다 생각하는 편이라 내가 김기덕을 좋아하게 될줄 알았다. 하지만 나쁜남자, 해안선 두 작품을 보고 김기덕을 정말 싫어하게 됐다.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김기덕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자유가 짓밟히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이런 상황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멀쩡한 여자가 조폭한테 잘못 걸려서 창녀로 전락하는데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행복하게 느끼는 장면이 나오고 또 아름답게 묘사되는거다. 이게 김기덕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기괴한 장면에서 나는 구역질만 나올 뿐인데, 어쨌든 현실반영은 탁월하다. 그리고 서구권에서는 박수갈채를 날린다.

여자 성노예 만드는거 박수갈채보내는게 맞나? 근데 유럽 심사위원들은 지들 손에 똥묻히긴 싫으니 ‘동양적 감성’ 이지랄 하면서 지네들은 안 그런척 하는거지.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다.

반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기괴하고 불쾌한 묘사는 나올지언정 등장인물이 추구하는 방향은 바로 ‘자유’다.

주인공의 채식으로 가족들이 불행해지고 본인도 죽어가지만 본인의 채식에 대한 주장만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나는 서구인들이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데에서, 김기덕에게 주어지는 상을 보며 느끼는 구역감과 분노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강작가가 동양인이어서 안도하는 듯한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동양에 대한, 한국에 대한 타자화는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페미니즘과, 정치적 민주화나 특히 ‘에코’ 페미니즘으로 두드러지는 한강 작가를 선정한데에는, 서구인을 데려오기에는 어려운 ‘미지의’ 존재로서 한국을 소비한것 아닌가 싶은 부분이 있었다.

한강작가와 김기덕감독이 서구인이 아니어서 타자화를 통해 더 주목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음은, 공통분모 였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유가 역겨웠음과 순수했다는 차이와 비교하면 굉장히 작은 부분이지만)

다시 요약하면,

작품 보면서 불편한건 둘이 비슷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에 있어서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론가들한테 한강이 여자 김기덕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동의 안 할거라 확신한다.

‘채식주의자’ 성애 묘사가 기괴한 이유

개인적으로 1000만 찍은 영화는 작품성이 어떻던 다른 사람이랑 소통하려면 꼭 봐야한다는 쪽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화제가 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방금 완독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조금 아는척 해볼 수 있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기괴하다는 ‘채식주의자’에는 확실히 기괴한 성애묘사가 나옵니다. 표현이 노골적인 것도 있겠지만, 상식을 벗어난 묘사들이 더욱 기괴한 느낌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사실 이런 기괴한 성애묘사는 선역과 악역의 경계를 흐리게하고 완급조절을 하기 위함입니다.

채식주의자를 ‘에코 페미니즘’ 소설로 보면 결국 진 주인공인 둘째딸은 남성 등장인물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역할로 보는게 맞는데요.

아버지도 그렇고 전남편도 그렇고 남성 등장인물들은 가해자이긴 하지만 일방적인 가해자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지만 둘째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모습으로, 전남편은 사랑없이 집안일 시키려고 결혼했지만 이혼에는 결국 채식을 계속하는 전부인의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요.

두 사람 외에도 주인공과 성관계를 맺는 형부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애가 묘사되는 두 사람은 한명은 정상인 한명은 정신질환자로, 원래는 정상인이 정신질환자를 착취하는 구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상인인 남성이 비정상적으로 성애에 집착하는 모습을 연출해서형부 또한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설명하는데요.

이로써 둘의 관계가 정상인-비정상인의 성적착취 구도가 아닌, 사실은(다소)비정상인-비정상인의 애매한 구도임을 설명해 완급조절을 해내는데 성공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러한 완급조절은 다른 유명한 페미니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과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해당 소설에서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편향되게 내용을 몰아갔었거든요.

그런데 채식주의자에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흐리게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을 하는 주인공이 정신병자로 묘사되고, 또 건강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이 비건을 조롱하기 위한 소설이라는 평도 있었다는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말도 안 되는 주장이죠.

성애에 대한 부분도 밑도끝도 없는 포르노 이런거는 아니고 나름대로 피해자-가해자 관계에서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 위한 나름대로 꼭 필요한 장치이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 유해도서가 되면 안 된다, 이런 얘기까진 아니지만요)

안본눈 삽니다 이런 얘기 많던데 솔직히 유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책 읽고 쓸 얘기는 확실히 많아지는거 같아서 읽기는 잘 읽은거 같네요. 이거로 글 한두편 더 쓸 수 있을거 같습니다.

한국의대 5년제 변경은 5년제

중국의사 국내 수입 위해서다?

규정을 살펴보면 완전히 틀린 주장인데요,

실제로는 규정이 안 지켜진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는게 정답이라고 봅니다.

2004년에 중국의대 졸업생이 복지부에 인정심사요청을 했는데 불인정 처분받았습니다. 중국의대가 5년제 라는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럼 교육부 말대로면 이제 한국의대도 5년제 되니까 중국의대 졸업생도 이제는 자격이 되는거 아니냐? 이거는 틀린 말입니다 규정상으로는요.

왜냐하면 상호주의 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외국의사의 중국의사면허를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임시면허만 내줄 뿐입니다.

한국의사면허를 중국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데 중국면허를 우리나라에서 인정해줄 이유는 없겠죠. 해당 부분에 대한 규정도 이미 존재합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 규정대로 하면 한국의대가 5년제로 바뀌더라도, 중국의대 출신은 한국 의사국시 시험을 치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규정대로 하면 시험을 치를 수 없습니다만 .. 현실은 뭐다? 규정을 어겨도 시험을 치르게 해주는 경우가 *다수* 있다 이거죠.

일부 인정기준미달 외국의대 인정에 문제가 있다며 제기된 소송에 대해 원고가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2심 패소하기도 했는데요.

국시원의 외국의대 인정심사 위원회는 규정에 어긋난 외국의대도 인정해줄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정기준 미달 의대들이 다수 인정받았고요.

같은 방식으로 중국의대 졸업생도 한국의사가 될 수 있다? 가능합니다. 규정에 어긋나도 가능하다! 이거는 팩트다 이 말이죠 ..

참고로 기준미달 해외의대에 대한 소송은 어찌 진행되고 있냐면 ,, 이것저것 진행되는게 있는 상태입니다. 다시 소 제기할때 설명할 기회가 있을듯 합니다.

서울의대 휴학 수리에 교육부가 격분하는 이유

젊은의사들 사이에 많이 돌던 ‘시체 분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의 얼굴에 화장을 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로, 진실을 감추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메디스태프에 돌던 ‘예언서’가 있죠.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정부가 은폐하려 하지만, 9월이 지나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고, 결국 ‘시체 분칠’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드러날거란 내용입니다.

이 예언서가 8월까지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다가, 9월이 되어도 대학병원 파산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틀렸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시체 분칠’이 벗겨진 것은 전공의가 아닌 의대생 쪽인듯 합니다.

의대생 휴학 수리 금지.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데 휴학 수리를 거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휴학 금지가 ICU에서 expire한 환자를 교육부가 분칠해놓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의대생들 이젠 진급 못하죠. 너무 늦었으니깐요. 정부가 만든 ‘의사 배출 1년 공백’은 이제 못 물립니다.

2020년에 국시거부하던 학생들에 12월31일 재시험이 확정된 사례가 있어서 그런지 아직 수습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착각하는 일반인 분들이 많은거 같은데요. 현실은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매년 배출되던 신규 의사 3천명의 공백은 이미 확정입니다.

내년 의사배출 3천명 공백이 이미 확정된 상황을, 휴학 금지로 소위 ‘시체 분칠’을 해놓은게 그동안의 상황이었던겁니다. 의사들은 EKG를 통해서 asystole인걸 아니까 환자가 죽은걸 알았지만, 교육부가 ‘휴학 거부’로 환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던거죠.

그런데 서울의대가 휴학을 수리함으로써, 의대 6개 학년의 진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공식화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서울의대가 ‘분칠’을 지워버린 셈입니다.

EKG 보고 환자가 사망한걸 알고있고, 일반인도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던 의사들 입장에서는 ‘시체분칠’을 지웠다고 격노하는 교육부가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요.

환자가 사망한 것보다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이 더 중요한 정부를 보니 미래가 걱정되고 슬픕니다. 후유증은 이번 사태가 마무리 되어도 윤대통령 퇴임 이후까지 지속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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