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선배 의사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던 전공의들이 선배 의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된듯 합니다. 그 전에는 전혀 안 그랬습니다. 선배의사들은 아무도 믿지 말고 대전협만 믿어야 한다는게 전공의들의 분위기였었거든요.
이런 분위기는 2020년 파업 때의 기억이 원인이라 봅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전문의 – 전공의 – 의대생 사이에 의사소통이 거의 안 이루어졌었습니다. 의대생들은 전공의들 상황을 의대협 통해서만 전달받았습니다. 의대협도 대전협에 전달받은걸 공유한거였으니 정보가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친한 전공의 선배에게 듣는 방법 뿐이었는데 이것도 사실은 제한적이었죠.
“우리들은 전공의들이 파업 끝내고 싶어하는지 몰랐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계속하기 무섭고 끝내고 싶다면 전공의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야한다”
일선 전공의들 중에 파업을 계속하기 무서워하고 당장 끝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요? 대전협만 계속하면 파업 계속하겠다는 여론이 80%에 달했었는데 말입니다.
그 정도로 30 중반 위의 선배 의사들은 전공의들이 파업을 계속하고 싶어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은 협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협에서 9.4 합의문으로 비난받을때, 억울하다 말한 근거가 ‘박지현 대전협 회장이 더 버티기 어렵다’길래 끝낸거란 주장이었으니깐요. (9.3. 범투위 회의때는 분위기가 반대긴 했습니다만)
2024년 2월 15일 지금,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병영 경영진들과 당장 파업을 원하는 전공의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대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죠.
‘우리 병원은 대전협 지침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곤경에 처한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도의사회 선배님들이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에도 파업 끝나고 대전협이 파업 끝낼 때 (1인시위만 하겠다는 로드맵 1단계) 전공의 대표들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제 기억엔 그나마 대구쪽 전공의 대표들이 서로 단합이 잘 되었고, 대표들 판단 하에 원내 투표 여러번 하고 간신히 단체행동 종료시켰습니다.
수련병원 대표 입장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어지면 대표끼리 소통하는것도 서로 의지가 되는거 같더군요.
저는 시도의사회 측에서 지역 수련병원의 전공의 대표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이 모여 식사자리 하는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시도의사회는 의사협회 대의원의 2/3를 차지합니다. 시도의사회가 사실상 의사협회 그 자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의사회와 전공의 대표들과의 접촉은 급박한 상황에 전공의들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누군지 꼽아보라면 의사들 100%는 전공의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쁘다고 대답할겁니다
전공의 선생님들 많이 바쁘긴 하지만, 시도의사회에서 지역 전공의대표들에게 연락해 병원마다 두세명씩 같이 나오라고, 여러 병원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 갖자고 한다면 다들 바쁘더라도 병원마다 한두명씩은 시간내서 나올겁니다. 전공의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선배님들이 청취하고 효과적으로 도움주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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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2020 시도의사회에서 전공의 대표들 많이 챙겨주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안 그런 곳이 많았다고 전달받아 올립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회 회장이 방금 사퇴의사를 밝혔습니다. 짊어져야했던 무게를 이해하고 사퇴 판단을 존중합니다.
2월12일 대전협에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온라인 임시총회를 가졌고, 다음날 점조직으로 사직을 제출한다는 회의 결과가 알음알음 퍼졌습니다.
저는 점조직으로는 전공의들이 원하는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걸 몇군데에서 얘기했었는데, 메디스태프에 올린 글은 잠금처리 당했습니다. 점조직으로는 힘들다는 말을 하는걸 보니 복지부 공무원이 확실하다나요.
하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바뀌었고 지금은 점조직 주장했던 박단회장이 쁘락치라는 글이 돌고 있습니다. 어제는 박단회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쁘락치였고 오늘은 박단회장에 찬성하는 사람이 쁘락치가 됐습니다. 이른바 군중심리가 정점에 달한 상태인 것입니다.
저는 군중심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고 싶습니다. 지금은 범인찾기할 시간이 아니니깐요. 지금은 전공의들이 어떻게 거버넌스를 형성할지를 고민해야하는 시점입니다.
커뮤니티를 보니 박단회장 탄핵 얘기가 나오는데, 이거는 대전협과 비대위의 구성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서 나오는 말입니다. 비대위가 나온 시점에서는 비대위원장이 누가 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2020년 파업에는 대전협 회장이었던 박지현씨가 비대위 위원장을 겸했습니다. 전공의 파업을 이끄는 것은 대전협 비대위 위원장인 것입니다.
현재 비대위 위원장이 누구인지는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12일 대전협 회의에서도 비대위 구성만 의결되었지 비대위 위원장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전공의들이 지금 해야하는 것은 박단 회장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대전협 비대위 위원장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대전협의 최고 의결기구는 대전협 대의원회입니다. 그리고 각 수련병원의 전공의 대표들이 대의원으로서 대의원회를 구성합니다.
제가 알기로 2월18일 대전협 대의원회의가 한차례 더 있습니다. 이 날 대의원들이 추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공의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대표를 내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2020년에 전공의 단체행동이 끝나고, 이후 이대목동병원 전공의협의회를 세우면서 집행부, 의국장 선생님들과 함께 회칙을 만든적이 있습니다.
회칙을 만들때는 특정한 상황을 떠올리면서 그 상황에서 회칙이 어떻게 회원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만들게 됩니다.
대전협 회칙은 대전협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전협 회칙에는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한 규칙이 있으며, 비상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이 (대전협 회장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금 해야할 일은 비대위 위원장 선출입니다.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서로 연락처 확보하고 오프라인에서 모여 어느 선생님을 어떤 방식으로(공동대표 형태라던지) 비대위 대표로 선출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회칙을 분석하고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할지 고민할 시점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기 바랍니다.
–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절대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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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차관은 “증원 규모(2000명)는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학교 홍윤철 교수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라면서 “정부가 제시한 규모가 과학적이지 않다면, 과연 어떤 것이 과학적인지 되묻겠다”고 반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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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KDI연구보고서, 보사연보고서, 홍윤철교수 연구보고서 3개 다 읽어봤는데 2000명 증원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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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일시적으로 1000명 증원을 제안했고, 해당 파트 연구원인 권정현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점진적으로 1200명 증원을 제안했습니다.(개인적인 KDI 연구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1500명도 1200명도 아닌 400~900명 증원이 제대로된 결론입니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2000명 증원은 비과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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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홍윤철 교수 연구보고서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에서는 애초에 의대정원 2000명 부족한 상황을 상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해당 연구보고서에서는 1500명 증원을 최대치로 잡았습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의사가 1년 265일 일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의사가 1년 265일 일하나요? 여하튼 이 보고서를 참고해도 의대증원 인원은 1500 선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라도 2000명 증원은 비과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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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제가 여러차례 게시글을 올린 것처럼 총체적인 난국인 보고서입니다. 보사연에서는 단순 표기오류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오류를 하나 수정하면 의사가 3만4천명 과잉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보사연 보고서에는 이 외에도 다수의 연구오류가 있으며 이 보고서에 대해서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가 연구오류를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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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위의 보고서들은 의료제도가 현재와 같이 유지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6일 발표한 정책 패키지에서 혼합진료 등 여러 변화가 있으면 의사 수요는 감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바뀌면 실제 증원인원은 연구보고서에서 제시한 인원보다 적어야만 합니다. KDI보고서와 홍윤철 교수 보고서가 1500명 가량 증원을 주장했는데 실제 증원 인원은 이보다도 적어야한다는 뜻입니다.
KDI보고서, 홍윤철 교수 보고서, 보사연 보고서 참고했으면 2000명 증원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증원 최대치는 1500명입니다. 그리고 KDI에서 국민 교육수준 향상에 따른 보정수치를 고려하면 의대증원 인원은 1000명 이하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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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2월6일 발표된 정책패키지까지 고려하면 의대정원을 늘리기는 커녕 오히려 동결 내지 감원을 고려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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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측의 ‘의대증원 2000명이 과학적’이라는 주장은 궤변입니다. 2000명 증원은 비과학적입니다. 국민 건강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결정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 커버사진은 1960년 일본에서 벌어진 ‘도쿄 찌르기’ 사건. 일본 사회당 위원장인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살해한 야마구치 오토야는 17세의 나이에 교도소에서 ‘천황폐하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목 매달아 생을 마친다.
지난 달인 2024년 1월은 유명한 정치인이 두 명이나 물리적인 습격을 받은 달이었다. 목에 칼을 찔린 이재명 당대표와 돌로 머리를 찍힌 나경원 의원을 보면서 우리나라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도 나름대로는 참으로 고달프구나 싶다.
습격범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난무했고, 음모론도 무성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음모를 가졌다다기보다 기본적으로 정신이상자였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백미는 바로 현실성과 상징성 두마리 토끼를 잡은데 있다. 그의 소설은 고도로 상징적인 정치 묘사를 하는데,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그럴것 같은 현실성을 보여준다.
상징성과 현실성 두가지를 동시에 갖춘 소설은 정말 드물다. 정치풍자 소설로 유명한 ‘동물농장’은 기본적으로 ‘동물’들을 등장인물로 사용한 우화였으며 ‘1984’는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SF소설이다. 상징적인 내용을 풀어가려면 현실성은 어느정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주변에 한명쯤 있을것 같은 사람들이 줄거리를 풀어간다.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의 소설이다.
스메르자코프는 표도르의 사생아다. 소설에표도르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표도르가 스메르자코프를 하인 취급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신경써서 챙긴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면 정황상으로는 표도르의 넷째아들로 보는게 맞다.
스메르자코프는 발작으로 인한 의식상실 상태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표도르를 살해했다. 죄는 드미트리가 뒤집어쓰게 만들고 말이다. 이 사실을 이반이 깨닫게되자 스메르자코프는 자살하여 드미트리가 무죄라는 모든 증거를 없애버린다. 이 사건으로 이반은 미쳐버리고 만다.
이반이 미쳐버린 이유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결국은 이반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살해를 저지른 것은 스메르자코프였지만 그에게 살인을 지시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반이었다.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에게 지시를 요구했다. ‘멀리 모스크바로 가지 마시고 근처인 체르마시냐에 가서 소식을 기다리십시오’
표도르의 두 아들은 원래부터 표도르를 증오했다. 표도르가 죽기를 바랐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고, 둘째 아들 이반은 표도르가 살해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이반을 존경하는 스메르자코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표도르 살해 전날,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을 떠봤다. 모스크바로 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지만 체르마시냐에 가면 소식을 듣고 금방 돌아올 수 있을테니 체르마시냐에 가서 기다리시라고.
이반은 이게 무슨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엉겁결에 스메르자코프의 요청을 받아들인듯 체르마시냐로 갔고, 평소 이반을 존경하던 스메르자코프는 이를 이반이 살인을 지시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며칠 뒤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의 지시대로’ 표도르를 살해한다.
스메르자코프에게 사실상 살해 지시를 내린 것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닳은 이반은 정신적 충격과 죄책감에 미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살인은 이미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 교사범이 되어버렸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한 것은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의 정치테러 풍자였을 것이다. 어디서 튀어나온지도 모르는 이름모를 과격주의자들이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서 지적 우월감과 자기 확신을 가지고 폭력사태를 벌인 것을 스메르자코프를 빌려 풍자한 것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밝혀졌을 뿐 정확한 친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대신 모스크바에 갔다와서 나름대로 도시물을 먹고 어느정도 문명적인 가치관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 없다. 오직 본인의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기심만이 남아있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에서도 그런 묘사를 위한 저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1800년대 러시아에서도 정치테러가 횡행했었나 싶다. 사실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인간의 본성은 똑같으니 그 때도 마찬가지였겠지. 정치에 과몰입한 어떤 이상한 사람의, 지도부의 의도도 반하는 통제되지 않는 정치테러는 그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이들의 모습을 스메르자코프의 부친 살해로 풍자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중에서는 느낌이 덜하지만 여전히 정치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정치적임에도 동시에 큰 깨닳음을 준다.
2024년에 벌어진 정치인 습격을 보고 200년 전에 쓰여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랐던 이유다.
용기를 행동으로 옮기시는 선생님들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 되시기를 바라며 도울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성평등 수치와 출산율’ 논문 오류 지적 ‘성평등 수치와 출산율’ 논문 오류 지적 사회 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평등 수치가 상승해야 출산율이 상승한다는 논문을 냈습니다.
저는 이 논문의 결론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논문을 확인한 결과 몇가지 오류도 찾아냈습니다.
제가 찾아낸 오류가 정말 오류가 맞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 journal-43-4-179.pdf 전기통신사업법 및 시행령에 따라 불법 촬영물 등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파일 다운로드
데이터 오류와 궁금한 사항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보사연에서 발간한 ”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출산율과 성평등의 관계에 관한 연구”에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질문 1.
그림 3. 사회경제적 발전단계에 따른 출산율과 성평등 수준과의 관계, 2번째 그래프를 보면 x축에서 선진국 그룹 국가들의 성평등 수준이 0.2~1.0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해당 논문에서 정의한 성평등 수준은 GGI(Gender Gap Index)입니다.
GGI는 WEF 논문에서 만든 수치인데, 여기에서는 1위 국가의 GGI가 0.912, 꼴지인 146위 국가의 수치가 0.405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선진국그룹 중 GGI가 가장 낮은 국가가 0.647입니다.
해당 그래프에서는 선진국 국가들 중 성평등 수준이 0.4 이하인 국가가 4~5개국으로 나오는데 이는 오류입니다.
이에 대해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2.
표 3. 그룹별 회귀분석에 따르면, 선진국 그룹(34개국) 에서 성평등 수준과 출산율의 관계에서 회귀계수 (B)가 0.6677이라고 했고, 성평등수준이 0.1 증가할 때 출산율이 0.667만큼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186p.)
성평등 수준이 0.1 증가할때 출산율이 0.667만큼 증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통계를 낸 바에 의하면 성평등 수준이 0.1이 아닌 1.0이 증가할때 출산율이 0.667만큼 증가하는 수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림3을 눈대중으로 봐도 GGI가 0.1 증가할때 출산율은 0.6이 아닌 0.06 증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에서 계산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주십시오.
질문 3.
통계에서 선진국 그룹 중 이스라엘을 제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outlier라고 제외했다고 하셨는데,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 이는 대한민국을 outlier라고 보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질문 4.
선진국 그룹의 성평등 수준과 출산율과의 관계에서 정확한 p value를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제외했을 때의 p value도 알려주십시오.
질문 5.
성평등 수준과 출산율이 reverse J shape를 보일 것이란 연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따로 분류했을때 구할 수치가 아니고 모든 국가를 다같이 통계에 넣고 돌릴때 나오는 결과여 야만합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따로 분류하면서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는 조사하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통계 돌렸을때 reverse J shape이 나오는지와, 이차함수적 관계에 있을때 해당 수식[f(x)]을 미분했을때 [f'(x)], f'(x)가 0이 나오는 시점의 x값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x 값과 우리나라의 GGI 수치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성 평등수준이 상승해야 출산율이 상승하는지 성평등수준이 하락해야 출산율이 상승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질문 6.
WEF 2023 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는 Gender Gap Index를 경제, 교육, 보건, 정치 4개 분야에서 얻은 수치의 산술평균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The Global Gender Gap Index annually benchmarks the current state and evolution of gender parity across four key dimensions (Economic Participation and Opportunity, Educational Attainment, Health and Survival, and Political Empowerment)
하지만 해당 논문에서는 Gender Gap Index를 정치 경제 2개 분야로만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원문에서 GGI의 정의와 논문에서의 GGI의 정의가 달라 혼동을 줄 수 있는데, 논문에서는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WEF의 GGI수치를 인용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보사연이 임의로 정의한 수치를 WEF의 GGI수치인 것처럼 사용한 것입 니다 이러한 보사연의 명칭 왜곡은 데이터 및 방법론의 투명성 원칙을 위반하는 연구윤리 위반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왜 없었는지 답변주십시오.
질문 7.
이전 청구의 질문 3, 4의 추가 질문입니다.
해당 데이터에서, outlier로 출산율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과, 가장 낮은 대한민국을 제외한 통계에서 – p value외에도 회귀계수가 몇으로 나오는지 – 한국의 Economic participation and Opportunity subindex와 Political Empowerment subindex의 산술평균 수치 가 논문에서 정리한 선진국들 평균 수준으로 증가했을때 예상되는 출산율이 몇인지 알려주십시오.
질문 8.
2024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전망치는 0.68입니다. 2023 WEF 자료(WEF도 합계출산율은 논문과 동일하게 World Bank의 데이터를 인용함)에 따른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84입니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0.14 감소했다면 우리 나라의 성평등 수준이 감소했기 때문에 합계 출산율이 감소했다는 의미인지 알려주십시오.
질문 9.
논문에서는 GGI와 출산율의 관계가 역J자형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WEF의 모든 국가들의 GGI로 통계 데이터를 정리했을때, GGI와 출산율의 관계는 R^2adj 값으로 비교했을때 선형관계, 이차함수 관계 둘 다 역J자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습 니다.
여기에 대해서 대답해주십시오 질문 11.
초록을 보면, 출산율과 성평등 수준과의 관계가 U자형이 아닌 역 J자형임을 도출하였다 했습니다.
성평등 수준이 산업화 단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으나 후기산업화 단계에서는 정적인 관계라고 했습니다.
왜 보사연은 IMF가 정의한 advanced economies와 그 외의 국가들을 별개로 조사한 데이터만 발표하고 전체 국가를 한꺼번에 정리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공개해주십시오.
질문 12.
대한민국의 WEF 성평등 수준 순위는 2019년 108위였고 2023년 105위였습니다.
GGI수치는 2019년 0.67, 2023년 0.68로 수치상으로 좋아졌습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한 순위로서, 그리고 절대적인 수치로서 모든 관점에서 봐도 대한민국의 성평등 수준은 향상됐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19년 0.918, 2022년 0.780입니다.
논문의 결론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평등 수준이 2019년보다 향상되었기 때문에 출산율이 증가해야하는데 오히려 감소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 저하가 성평등 수준 저하 때문인건지 설명해주십시오.
질문 13.
그림 2. 출산율과 1인당 국민소득과의 관계에서 회귀 분석에 선형관계와 이차함수관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이차함수 그래프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수식이 TFR = a0 a1(GDP) a2(GDP)^2 e 인데, 여기서 a0, a1, a2, e의 수치를 알려주시고 해당 수식을 TFR = a2(gdp = x)^2 e’ 로 계산했을때 x값 (GDP가 상승하며 출산율이 상승하는 변곡점에서의 GDP값)이 몇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림 2에서는 x가 대략 6만으로 보입니다.
(정보공개청구에서 플러스를 입력하면 삭제됩니다. 이 부분 수식 읽으시는데 참고 부탁드립니다)
질문14.
그림 2. 출산율과 1인당 국민소득과의 관계에서 회귀 분석에 선형관계와 이차함수관계 두 가지만 분류했습니다.
두 관계의 R^2adj의 수치는 0.3127, 0.4867인데, 삼차함수로 R^2adj 수치를 계산하면 1.0에 훨씬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삼차함수관계로 그래프로 다시 추세선을 그렸을때의 R^2adj수치와 표를 제공부탁드립니다.
질문15.
논문의 영어 abstract에 보면 keyword로 women’s education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WEF의 GGI 4개 수치 중 교육수치를 일부러 제외하고 통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women’s education을 keyword에 넣은 이유가 무엇인지요?
키워드에 women’s education을 추가한 근거를 설명해주십시오.
질문 16.
WEF의 Gender gap index에서는 군휴학 중인 남학생들도 대학 재학생으로 계산하여, GGI 중 educational attainment에서 한국의 순위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옵니다.
참고 : https://brunch.co.kr/@qkrjiyong/12 (성차별순위 한국 105위. 통계왜곡은 없을까?)
그럼에도 보사연은 연구에서 WEF의 데이터를 인용했습니다.
WEF Global Gender Gap Report 2023의 인용이 적절했는지, 해당 보고서에서 발생한 왜곡과 관련해 보사연의 입장을 알려주십시오.
끝.
의대증원 규모, 저는 동결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어느 정도는 늘려야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의사들보다 훨씬 더 온건적인 쪽이었죠. 그런 제가 보기에도 오늘 확정된 2000명 증원은 충격적입니다.
그동안 정부 측에서 그렇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원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2000명이라는 규모에는 어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건가요?
그동안 발표된 여러 의대증원 보고서 중 그나마 가장 괜찮은 연구인 KDI 보고서에도 1500명 증원을 적정하다고 분석했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권정현 KDI 연구위원도 2023년 6월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1200명 증원을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분석한 바로는 KDI 보고서에서도 의도적인 수치 부풀림이 있어서 실제 KDI 보고서의 결과는 400~900명 증원이 정확한 계산이라는 결론 입니다.)
KDI 보고서보다 인용할 가치가 더 떨어지는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도 1000~1200명 증원을 주장했습니다.
거의 모든 의대증원 연구보고서들이 1500명 이하 증원을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의대증원’을 주장하면서 의협에게 비과학적이라고 몰아붙이던 정부가 막상 2000명이나 증원시킨 것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입니까?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서 성차별이 개선되면 출산율도 상승할 것이라는 논문을 발간했다. 이 논문은 WEF 성차별 통계를 근거로 논리를 전개했는데, WEF는 내가 브런치에서도 여러차례 분석글을 올렸던 그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에는 성차별이 개선되면서 출산율이 줄어들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성평등이 오히려 출산율을 올린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성차별이 개선되면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결론에 대해서 완벽하게 틀리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어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통계 오류와 데이터 디자인의 문제점, 그리고 통계적인 개리멘더링에 대해서다.
정보공개청구에는 통상적으로 10일 안에 답변을 주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10일이 되었는데도, 보사연은 내가 던진 질문이 어려웠는지 답변 연기가 결정됐다.
UNDP보고서에서는 한국이 성평등 10위권의 전세계적 선진국인데 WEF 성평등 순위는 100위 바깥의 아주 후진국이다. 둘 중에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우리나라의 성평등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성평등이 출산율을 올릴 것이란 주장이 맞나? 그리고 WEF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순위는 대체 왜 이렇게 낮은 것인가?
그동안 WEF 보고서를 여러차례 분석하면서 굵직한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서구권 여성의 페미니즘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WEF통계는 서구 여성들이 생각하는 성평등을 수치로 계산한 것이었다. 서구권 여성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들을 조사했다. 조사 항목에 한국 여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몇 개 없었다. 예를 들면 여성이 얼마나 배려받는지, 남성들로부터 보호받는지, 더치페이를 요구받지 않는지,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가는지 등이다. (WEF 통계에는 데이트 폭력도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낮은 편이다) 이런 것들은 WEF에서 조사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WEF 통계에서는 여성이 돈을 벌어야만 성평등 순위가 상승한다. 여성 정치인 비율이 높고, 여자 사장 비율이 높아야 성평등 순위가 높아진다. 여자들이 높은 직급에 올라가야 성평등 순위가 상승하고 그들이 행복해질까?
내가 살면서 겪어본 한국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았고, 직장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WEF 통계는 여성이 육아보다 직장에 전념하고, 직장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성평등으로 판단했다.
퇴직하고 육아에 전념하기 원하는 여성은 성평등의 적이었다. 오바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WEF 통계상으로는 그랬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걸까? 나는 이 차이가 문화적, 인종적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인종적 차이를 들먹이면 인종차별로 직결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며,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뤄질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문화적 차이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동아시아 여성의 페미니즘은 왜 서구권 페미니즘과 다를까? 나는 유교 문화가 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한국 여성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유교주의 문화가 사실은 한국여성들 마음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여성들 특유의 성적 엄숙주의, 남녀 분리주의, 가부장적 국가 주도의 겸열 (박가분 작가의 글을 참고함) 은 서구 여성의 페미니즘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서구에서는 브래지어 착용도 여성에 대한 규정과 검열이라며 차별로 구분짓는데, 우리나라에서 아나운서가 노브라로 방송에 나왔다가 젖꼭지 실루엣이 보이기라도 하면 여성평등을 외치던 이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비난에 나선다.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모습이다.
서구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만의 고유 분위기는 왜 유교 문화에서 기인한 것일까? 아니 그 전에, 한국 페미니즘만의 특성이 유교와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이 맞나? 그렇다면 한국인을 구성하는 유교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한국인을, 넓게는 동아시아인들을 서구인들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구별짓는가?
나는 여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연구가 의외로 너무나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유교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인 분석 없이 추상적인 근거로 너무나 쉽게 결론내린다. 유교란 무엇인가? 어떤것이 유교적인 것인가? 우리의 어떤 것이 유교적이고 어떤 것은 유교적이지 않은가?
한국인 안의 유교를분석하고 비판한 책으로 가장 유명한것은 아마도 2000년 즈음 나온 ‘유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문제는 유교에 대한 정의가 너무 빈약하다는데 있다. 해당 책을 보면 한국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유교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고쳐야할 것으로 보는데, 20년이 지나서 보기에는 틀린 내용이 너무 많았다. 대표적인게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는다’ ‘세계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이 외국어를 못 하는것은 한국어가 영어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고, 세계적이지 않은 것은 외국과의 교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학적, 지정학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게 왜 유교 때문인가? 유교가 외국어 공부를 금지하고 세계화를 거부했나? 나는 저자가 바라본 유교의 문제는 유교의 문제가 아니고 저자가 바라본 기성세대의 문제를 유교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24년 현재 세계의 주류 페미니즘은 자유민주주의에서 기원한 것이다. 대서양 문명에서 나온 것이고, 문명의 자유로운 토론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대 페미니즘은 일종의 철학이고 정치사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철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에 가깝고 정치사상 관점에서 볼때에는 심지어 퇴행적이기까지 했다. (2017, 2018년도의 넷페미 운동이 2024년에 와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와 같이 한국의 넷페미 운동에 질린 사람들, 그리고 아직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비판하고 싶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싶다면 한국의 페미니즘이 서구의 페미니즘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페미니즘은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고 PC주의라는 주류 정치흐름을 낳았다)
나는 한국의 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힌트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임명묵 작가를 좋아한다. ‘K를 생각한다’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질서정연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그의 북콘서트에 찾아가서 직접 질문했다.
‘한국의 종교적 기반은 유교가 맞다고 보는가? 그것은 성리학인가? 한국의 무엇이 유교적인지 무엇이 유교적이지 않은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는 ‘오구라 기조’를 추천해주었고, 오구라기조가 저술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는 성리학에서 비롯된 한국인의 사고관을 읽을 수 있었고, 거기에는 놀랍게도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한 페이지 있었다. 그리고 나는 1998년에 쓰여진 이 내용이 2020년대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한 분석으로서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서론에 해당하는 이 글을 오구라기조의 글로 마무리짓고자 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기조 지음) 韓国は 一個の哲学である 6장 리기의 경제, 정치, 역사. 206p.
여성을 기 진영의 존재로 폭력적으로 규정하고, 리 진영의 존재인 남자에게 지배되어야 한다고 하는 유교적 위계질서에 대해, 여성은 기 진영의 존재가 아니다, 여성도 ‘리’를 드러낼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한국의 페미니즘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는 여성이 자신을 기 진영의 존재로 간주하고 그 욕망, 반유교적 성향을 선언하는 움직임이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욕망의 주체라고 말하는 여류 소설가나 여자 배우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시선을 끄는 것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도적적인 위계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서 하위자였던 여성을 상위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의 일인 것이다.
그녀는(둘째 부인 소피아) 표도르의 두 아들인 이반과 알렉세이를 낳았다. (중략) 어머니가 죽은 뒤 두 아들은 이복형인 드미트리가 겪은 것과 같은 운명을 거쳤다. 그들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잊힌 채, 하인 그리고리에 의해 문간방으로 옮겨졌다.
어머니의 은인이며 보호자였던 장군 부인이 이 아이들을 처음 발견한 곳도 이 하인의 집에서였다. 장군 부인은 그때까지도 건강했고, 양녀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8년 동안 잊지 않은 채 소피아(둘째 부인)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듣고 있었다. 소피아가 병에 걸리고 비참하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손님들에게 여러 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년은 혼나야해. 배은망덕해서 천벌을 받은 거야!”
소피아가 죽고 석 달이 지난 뒤 장군 부인이 갑자기 우리 읍내에 나타났다. 그녀는 표도르의 집에 찾아가서 30분 만에 많은 일을 해결했다. 저녁 무렵, 8년 동안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표도르가 술에 취해 부인 앞에 나타났다. 소문에 따르면 부인은 그의 뺨을 두어 번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서너 번 넘어뜨렸다고 한다. 그런 뒤 입을 다물고 두 아이가 있는 하인의 집으로 향했다. 부인은 씻지 않아서 더러운 얼굴에 꾀죄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그리고리(하인)의 뺨을 때린 뒤 두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 아이를 그대로 담요에 말아서 마차에 싣고 데려가버렸다.
그리고리는 충실한 하인답게 그 봉변을 당하고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인을 마차까지 모셔다드리고, 허리 굽혀 인사하며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고아들을 거두셨으니 신의 은총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넌 바보야!”
장군 부인은 마차 안에서 이렇게 외쳤다.
표도르의 둘째 부인이었던 소피아는 입양아였다. 원래는 사제 집안의 딸이었는데, 부모님을 잃고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장군부인(보르호프 부인)에게 입양되었다. 장군 부인이 소피아에겐 은인이고 착한 사람이긴한데 괴팍한 성격도 있어서 10대인 소피아가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소피아는 돈 밖에 모르는 표도르마저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두번째’ 도피 결혼을 저지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4. 가상캐스팅https://brunch.co.kr/@qkrjiyong/26에서 소피아의 아들인 이반과 알렉세이를 이병헌과 임시완처럼 묘사했는데, 어머니의 미모를 닮았을 것이기에 잘생긴 외모를 상상하기 충분할 것 같다.
소피아가 표도르와 도피 결혼한 것은 장군 부인에게 명백한 배신이었다. 파렴치한 표도르와의 결혼을 그렇게 반대했는데 거둬주고 키워준 양딸이 자기 말을 안 듣고 최악의 남자와 도피에 결혼까지! 장군부인은 분노해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그녀는 양녀가 사망하고 세달 뒤, 피한방울 안 섞인 양녀의 두 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키운 정은 남아있었나보다 싶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거 아니라는 멘트를 했을거 같은데 .. 러시아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장군부인이 술에 취한 사위(표도르)를 두들겨패고 러시아의 진흙바닥에 두세번이나 넘어뜨렸다고 하니 아주 정정한 기존쎄 러시아 할머니(혹은 노년에 가까운 아주머니)의 모습이 연상되어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먼저 이반과 알렉세이가 어머니의 성향을 얼마나 닮았을지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글의 앞 부분에서 소피아는 부모님처럼 굉장히 종교적인 성향의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종교의 길을 걷는 알료샤와, 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어 오히려 무신론의 길을 더 적극적으로 걷는 이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두번째는 하인 그리고리다. 그리고리는 이 장면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오는데, 농노제 폐지 후에도 파렴치한 주인인 표도르를 떠나지 않고 그를 계속해서 섬기고 있다. 그 와중에 표도르 챙기면서 표도르에게 화내고 훈계하는 모습은 계급주의 사회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어떻게 그들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주장한 프랑스 혁명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그리고리의 책임감 있는 성격은, 자신을 폭행하기까지 한 장군 부인을 축복까지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하인 그리고리는 작품 최후반부까지 제법 비중있게 나온다. 그리고리는 이반과 알렉세이 뿐만 아니라 첫째인 드미트리도 직접 키웠었는데, 나중에 다 커서 28살 먹은 드미트리가 술먹고 자신을 두들겨패는 바람에 배신감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내가 키운 드미트리 도련님이 ..’라며 울먹이는 그리고리의 모습을 보면 연민의 감정이 샘솟는다.
러시아 농노가 살던 집. 그리고리는 이런 곳에서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다 키웠다.
참고로 나중에 그리고리 팬 다음 날 술 깨서 죄책감 느끼는 드미트리의 모습도 나오는데, 자기 키워준 하인을 두들겨패놓고 무슨 죄책감인가 싶어 한심하면서 그 와중에 짠하기도 하고 .. 여튼 심정이 복잡해진다.
별도로 한번 생각해 볼만한게 있는것 같다. 장군 부인 입장에서다.
양녀의 두 아들을 데려가는(사실상 구출이라 보는게 맞을듯) 본인에게 ‘신의 은총이 있을것’이라며 축복하는 하인 그리고리에게 독설 대신 할 수 있는 대답이 또 뭐가 있을까?
이미 때려버린 뺨인데 갑자기 표정 바꿔서 미안하단 말을 하기는 힘들거 같고. 기존쎄인 장군 부인은 ‘아무튼 넌 바보야’라고 소리도 질렀는데 이거 말고 대신할만한 대답이 있을까?
사실 나였어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거 같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손자 둘이 농노 집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살고 있으니) 대한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행동으로 이어졌을테니 말이다. 분노의 감정 외에는 표현할 감정이 없었을 것 같다. 뺨 맞고 욕도 먹은 그리고리도 그리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말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추진력이랄까. 합리주의적인 행동 대신 감정이 앞서 발생한 충동적인 행동이 보여줄 수 있는 순기능을 잘 보여준 장면 같다.